‘평양 아줌마의 평양 이야기’ 강연-4

‘평양 아줌마의 평양 이야기’ 강연이 지난 1월 17일 저녁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6.15수원본부,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 통일나눔이 공동 주최했다. 북 이탈주민으로 남에 오자마자 고향으로 송환을 요구 중인 평양주민 김련희 씨가 강사로 나섰다. 김 씨는 북에서 42년 동안 살았고 2011년부터 6년째 남에서 살고 있다. 북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남 사람들의 북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바로잡아 주었다. 일단 이야기가 정말 재밌고 한편으로 신기하기까지 했다. 단 한 편의 기사로 작성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강연 내용을 정리해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하나의 민족, 한 형제인 북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 강연을 하고 있는 ‘평양 아줌마’ 김련희 씨. ⓒ뉴스Q

‘평양 아줌마’ 김련희 씨가 세상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그때 세상에 나서야 되겠다고 사연을 쭉 얘기한 게 더는 나아갈 길이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로 제가 5년 동안 가족과 생이별을 해보니, 어떻게 자식과 떨어져 살 수 있을까? 부모님과 떨어져 살 수 있을까? 5년 동안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어요. 이것이 나로 끝나면 좋겠지만 내일이나 모레나 나 같은 사람이 또 생길 거잖아요. 국정원이 나 같은 사람을 계속 만들거잖아요! 그러면 나 같은 사람, 생이별하는 이산가족이 계속 생길 거고요. 이 나라에서는 누구도 거기(국정원)에 가면 모를 거잖아요. 그냥 죽으라고 할 거잖아요. 그게 가슴 아팠습니다. 분단이라는 거 때문에 왜 우리가, 한 민족이 희생을 당해야 합니까? 그것 때문에 내가 못가는 한이 있어도,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 같은 희생자가 없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나서게 됐습니다.”

요즘 김 씨는 그나마 마음이 편하고 따뜻하다고 했다.

“기자 분이 ‘당신 기사가 나가면 일상생활을 못할 수도 있고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했어요. 기자는 특종만 소개하는 게 기잔데, 기사 나간 다음 사람의 신변까지 걱정하는 거 보고 이분이 진실한 기자인 것 같더라고요. ‘참 기자는 이런 분들이구나’ 느꼈어요.”

“남쪽에서 5년 동안 살았지만 3년은 혼자 암흑 속에서 모대기는 시간이었어요. 10개월은 감옥 속에서, 어둠 속에서 살았고요. 밖에서 5년 동안 산 기간은, 어떤 순간은 내가 내 집에 내 형제 옆에 있나 착각할 정도로 편하고 좋은 따뜻한 시간이었어요. 사람들이 지금도 만나면 ‘얼굴이 좋아지네요’라고 해요. 마음이 편하고 마음이 따뜻해져서 그랬던 거 같아요.”

김 씨는 “남쪽 분들이 북쪽을 너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른바 “진짜 북맹”이라고 했다.

“여기 와서 살아보면서 느낀 것은, 남쪽 분들이 북을 너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진짜 북맹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북맹이 뭔지 여기 와서 들었는데 ‘진짜 북맹’이더라고요. 어느 정도로 모르냐면, 여러분들은 그래도 어지간히 생각이 트이고 넓은 사람들이잖아요. 북쪽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였을 거고요.”

그러면서 김 씨는 어느 남쪽 통일운동단체 대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통일운동단체 대표 분이 처음으로 북의 평양을 갔더래요. 버스 타고 어느 농장을 지나가다가 감자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말을 했지요. ‘어, 감자도 꽃이 우리랑 똑같네!’ 그러니까 북쪽 안내원이 ‘꽃만 같은 게 아니라 감자 알도 같습니디다!’ 그런 말을 했답니다. 미국, 일본, 중국 가서 감자꽃이 같은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왜 우리 조국, 같은 조국인데 우리나라 감자꽃은 남쪽과 달라야 된다고 생각하는지요? 이게 바로 70년 동안 갈라져 살았던 조국의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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