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하.

현재 새누리당과 조선일보 등 수구세력이 주도하는 개헌의 골자는 무엇일까? 언제나 그렇듯 현란한 입놀림으로 포장을 하지만 정치체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꾸려는 게, 일단은 겉으로 드러난 핵심이다.

박근혜를 통해 대통령제의 폐단이 다 나왔으니 책임성 부족한 5년단임 대통령 걷어치우고 아예 권력을 분산시키자는 거다. 하지만 그뿐일까?

현상을 보면 그럴싸하지만 헌법의 본령을 상기해본다면, 지금 이들의 수작에 말려들어 ‘그래도 개헌은 필요하지’ 등의 부분 동의 운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새누리당을 앞세운 수구세력은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움켜쥐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정치권력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수단, 재화의 독점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컨트롤타워다. 대통령이든 총리든 이 목적에 부합한다면 아무거나 끌어다 써도 무방하다.

이런 자들이 단결해 정치제도를 바꾸려 한다면 더 오래 해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의 실행계획에 불과할 터. 내용이 아무리 번듯하고 개헌안에 현실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도, 지금의 개헌 논의 자체를 박살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건 저항해 저지시켜야 하는 것은 싸움의 기본이다. 일례로 박근혜의 복지정책을 들 수 있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 입에서 나왔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잠깐 내용에 시선을 두고 맥락을 잃을 때 이미 패배에 한 발을 담그게 되는 것이다.

정말 이번 박근혜 비선실세 게이트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기인했을까?

대통령제는 의회 독재를 막기 위해 미국에서 발명되었다. 지난 2013년 이석기 위원이 국회의원들의 담합으로 제명되고 이듬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었을 때, 나는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 강화에 대해 고민했었다. 박근혜와 상관없이 말이다.

자격 없는 대통령이 선출되는 시류를 변화시켜 통치방식을 정화하는 게 우선이지 싶다. 또 권한의 크기 문제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다시 끌어내릴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회자되는 제도 허점으로 보자면, 직선 통수권자 없는 의원내각제는 우리 동네 새대가리 국회의원을 정상회담에서 보게 되는 참극을 낳을 수도 있다. 중임제도 그렇다. 4년을 말아먹고 선거정국에 반짝 반등하면 그 인간은 어쩔 것인가. 미국의 부시가 어떻게 재선되었고 8년간 뭐했는지 보면 된다.

즉, 왕도는 없다. 제도에 대한 논의야 필요하면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란 거다. 중요한 건 어떤 통치인가 하는, 이거 아닌가.

사실 수구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개헌을 준비해왔다.

2001년에 서청원이 위원장으로 있던 한나라당 정치발전분과위는 미국과 흡사한 4년중임 정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대안으로 하는 개헌안을 집중 연구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당시 이회창 총재는 이를 극렬 반대했었다. 법조계 출신으로서 헌법에 대한 보수적 입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2007년, 이번엔 노무현 정권이 개헌을 들고 나오자 이회창이 영토조항 등 “체제의 기초를 건드리는 논의가 폭주할 수 있다”며 이런 식의 개헌 논의는 재고의 가치가 없음을 피력한 일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일단 개헌 논의에 들어가면 국민 의사와 상관없이 헌법이 걸레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유신헌법엔 통일주체국민회의 말고도 긴급조치가 있었다.

대통령직을 초등학교 반장보다 우습게 여긴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헌법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경계해야 마땅하다.

현시점에서 헌법을 논하자면 오히려 헌정을 파괴한 대통령부터 하야시켜야 한다. 야당도 이를 분명히 인지하고 개헌 떡밥에 부화뇌동해선 안 될 것이다.     

 

박승하

20살 때부터 살아온 수원과 수원사람들을 사랑한다. 평소엔 상냥하고 잘 웃고 유머를 좋아한다. 하지만 민중들을 깔보고 날뛰는 기득권에겐 들짐승과 같은 야성과 분노로 맞서는 ‘저항하는 청년’이다. 민중연합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현재는 청년노동자 권리찾기 단체 <일하는2030>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우뚝서기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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