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재소자들과 함께 절반의 징역을 사는 사람들

세상이 아무리 잔인해도
유순하고 정직한 마음은 통한다.
창살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마주 보고 있는 이들의 경계선이
인간의 나뉨이 아니었으면.

모든 생명은 채찍질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생명과 양심에 견주어 타인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특히 뼛속까지 스며드는 인간의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면 서로 아끼고 따뜻하게 안아줘야 한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혹은 혼자만의 이기심으로 인간의 양심을 저버린다면 세상을 비관하는 슬픈 영혼은 더욱 늘어나게 마련이다.

▲ 안양교도소 입구. ⓒ이동권

교도소에는 두 가지 진실이 존재한다. 때리는 자와 맞는 자다. 서로 진술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교도관이나 수감자 모두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은 교도관이, 내일은 수감자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돼 연일 뉴스에 오르내린다.

공교롭게도 교도소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산교도소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을 상습적으로 집단폭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용소 내의 인권유린을 감시하는 CCTV는 무용지물이었다. 수감자가 폭행당하는 장면이 녹화된 자료들은 모두 교도관들에 의해 삭제된 상태였다.

아주 구체적인 사실도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교도관들이 일명 ‘개털(가족이 없는 수감자)’이라고 불리는 수감자들을 집단폭행해 장이 파열되거나 어깨가 탈골됐으며, 무리하게 계구(수갑, 포승줄, 쇠사슬 등)를 사용해 손목에 멍이 들거나 핏줄이 터지기도 했다.

반면 수감자들이 교도관을 폭행한 사건도 나날이 늘고 있다. 법무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감자들의 폭행이 지난 10년 사이에 20배 이상 늘었으며, 소란이나 난동을 피우는 건수도 폭증했다. 물론 교도관들이 수감자를 폭행한 것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교도관과 수감자 간의 마찰이 점점 빈번해지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여서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아이템을 선정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몹시 부담스러웠다. 동료들뿐만 아니라 절친한 신문 기자들조차 모두 말렸다. 이들은 ‘잘 써도 욕을 먹고, 못 써도 욕을 먹는 일에 나서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면서 “의식 있는 독자 중에는 ‘교도관’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고 충고했다. 그 중에서도 엄혹했던 독재정권 시절에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잡혀 들어간 사람들이나 국가보안법으로, 때론 말도 안 되는 조작사건으로 끌려간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일부 사건 때문에 진실이 와전되거나 선량한 교도관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 자기 편의만을 위해 일탈행위를 일삼는 악질 수감자들과, 그것에 발목이 잡혀 괴로움을 당하는 교도관들의 피해에도 응당 책임 있는 글을 써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교도관은 가해자, 수감자는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우리 사회의 선입견을 털어버리는 동시에 일부 수감자들의 비뚤어진 행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됐다.

▲ 권혁선 교사. ⓒ이동권
악의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수감자

수감자들의 인권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교도 행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계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부에 보고하고 적정성을 심사받도록 했으며, 징벌방 수용 시한도 1개월로 줄였고, 수감자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신문고’ 같은 각종 제도를 만들어 교도관들의 인권유린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게 했다.

그러나 교도관에 대한 처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교도관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은 10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이들은 수감자들의 인권을 일방적으로 짓밟는다고 비난을 받으며, 수감자들의 일탈행위나 범법행위를 개인적으로 제재할만한 권한이 사라지면서 이들을 통제하고 대처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이유로 교도관들은 수감자의 돌발행동에 미처 대처하지 못해 폭행을 당하기 일쑤다.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일도 다반사다. 한 교도관은 수감자의 폭행으로 코뼈가 부러지고, 갖가지 협박과 폭언으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아야 했다. 수감자가 휘두른 둔기에 맞아 사망한 교도관도 있다. 이 사건은 수감자의 인권 못지않게 교도관들의 인권 또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교도 행정이나 관리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다.

수감자들은 조그만 구실이라도 잡으면 교도관들을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하거나 위협을 한다. 꾀병을 부리면서 의무실에 데려다 달라고 문을 차기도 하고, 교도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감자들이 동시에 배가 아프다고 여기저기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도 한다. 일부 수감자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해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모두 교도관의 책임이다.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안양교도소 권혁선 교사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수감자들로부터 인권위 진정, 청원, 소장면담, 고소, 고발, 정보공개청구 등으로 괴롭힘을 당해 검찰에 불려가거나 부끄러운 경험을 한 교도관들이 많다.”면서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이 남발하는 고소, 고발 공포에 위축돼 있으며, 오히려 감시를 받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황길영 교위도 악의적으로 문제를 만드는 수감자들을 가장 힘들어했다. 대부분 그렇지 않지만 5% 정도의 수감자가 고소, 고발 등을 악용해 교도관들을 괴롭힌다는 것. 그는 “시대가 변해서 수감자 처우도 많이 좋아졌고, 인권의식도 높아져 함부로 대할 수 없는데, 수감자들이 이러한 점을 악용해 ‘소장을 면담하게 해달라’, ‘고소하겠다’면서 자기 자신만 편하게 지내려 한다.”고 말했다.

정범희 교감(관구계장)의 고통도 비슷하다. 수감자의 권리는 제한 없이 열려 있지만, 수감자들이 이를 무분별하게 사용해 문제가 된다는 것. 그는 “한 수감자는 한꺼번에 수천 건의 정보공개를 신청해 교도소 업무를 마비시킨 적도 있다.”며 웃어버렸다.

교도관이 악당이라고?

나는 이 문제의 원인을 교도 시설과 관리인력 부족, 그리고 교도관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우리 사회의 편향된 인식에서 찾았다.

교도소의 세 평 남짓한 방에서 수감자 12명 정도가 생활한다. 머릿속으로 계산해 봐도 정원을 훨씬 초과한 듯 보인다. 게다가 교도관의 숫자도 턱없이 모자란다. 교도관 1명당 관리해야 할 수감자 수가 100명이 넘는다.

권혁선 교사는 “교정 인력이 부족해 스트레스도 많고 육체적으로도 매우 피곤하다.”면서 “이런 상태에서는 섬세한 교정 행정을 기대하는 것이 어려워 교도관도 수감자도 모두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경찰관도, 소방관도 다 같은 공무원인데, 우리 사회는 유독 교도관에게만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어 더욱 힘들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교도관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아니 교도소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을 색안경을 낀 채 본다. ‘천하게’ 보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나쁘게’ 본다. 지금이야 직업에 대한 생각이 순화되면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곁눈질은 매우 심했다.

▲ 황길영 교위. ⓒ이동권
기실 이들도 교도관이 되기 전에 교도관을 편협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래서 교도관이 되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이 뒤따랐다.

정범희 교감이 처음 교도관 일을 시작할 당시, 교도관은 이직률이 높고 사회적 편견이 심한 직업이었다. 그래서 평생직장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직장을 떳떳하게 알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결혼도 하고, 신앙을 갖게 되면서 교도관에 대한 생각도 새롭게 고쳤다.

권혁선 교사는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교도관 시험에 한번 응시해 보지 않겠느냐는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그도 처음에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교도소는 지하에 있고, 쇳소리만 들리는 살벌한 곳으로 알아 적잖게 꺼렸다.

황길영 교위도 처음 시작할 때 많이 망설였다. 지금도 힘들고 화가 나면 열쇠를 던지고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직업에 대한 보람을 가지면서 사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는 “아직도 사회적인 인식이 나아지지 않았지만, 내가 변했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영화에서처럼 수감자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이 교도관들이라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실은 다르다

교도관은 수감자가 규칙을 어기거나 지나친 일탈행위를 저지르면 징벌을 준다. 징벌은 수감자를 징벌방에 별도로 수용하고 도서·신문 열람 금지, 작업 상여금 삭감, 운동 제한, 서신 수발신 금지 등의 제재를 가하는 것. 하지만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해 교도관들의 가슴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권혁선 교사의 말이다.

“문제 수감자 격리사동에서 한 수감자가 난동을 피웠습니다. 몸에 자해하고, 교도관들에게 욕하고,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집기를 부수고 난리가 났죠. 똥을 싸서 교도관에게 집어 던지기도 했고요.”

수감자가 자해하는 방법은 손톱이나 밥그릇으로 몸을 긋거나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행동.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교도관은 상부에 즉시 보고하고 사고 방지를 위해서 수감자에게 계구를 채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는 가족들은 교도관들에게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느냐고 항의한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다.

“교도관의 의무는 수감자들을 건강하게 관리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수감자들을 억지로 그렇게 만드는 경우는 없지요.”

이뿐만이 아니다. 늘 친절하고 온화했던 수감자가 갑자기 돌변해 교도관의 얼굴에 침을 뱉거나 폭행을 행사하기도 한다. 교도관들은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라며 이해하고 말지만,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하고 나면 경계심부터 생긴다. 또 밤에 시찰을 나가면 ‘발소리가 나서 잠을 잘 수 없다’, ‘딸랑거리는 열쇠 소리 때문에 잠이 깼다.’며 취침방해로 고소하겠다는 수감자도 있다.
수감자들이 교도관에게 앙심을 품고 사회에 나가 보복하는 경우도 있다. 한 교도관에 따르면 근무를 마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동료가 출감자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죽었으며, 아직도 그 사건은 미결 처리된 상태다.

하지만 정범희 교관은 “예전에는 출감자들에게 보복을 당하기도 하고 조폭들에게 협박을 받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면서 ‘교도소 안에서 당하는데 밖에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교도관은 사람을 다루는 일인 만큼 무엇보다도 어렵고 힘겨운 면이 있다. 그런데도 그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데다 잠자는 시간도 일정치 않아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많다.

실재 교도관들의 정신건강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 연구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금품 유혹, 수감자로부터 위협,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을 앓는 교도관들이 많다.

권 교사는 “교도관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폐해 있다.”면서 ‘교도관들이 정기적으로 정신과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사회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교도관들을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또 “교도소에서 인권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건이 생길 때마다 언론이나 시민들이 싸잡아서 교도관들을 욕하면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 정범희 교감. ⓒ이동권
수감자를 우리이웃으로 포용해야

교도관들의 성추행이나 집단폭행, 가혹행위 등 교도소 안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과 비리에 대한 언론 보도가 끊이질 않는다. 서울구치소에서는 교도관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한 여성 수감자가 붕대로 목을 매고 자살했으며, 강원도 모 교도소에서는 교도관이 돈을 받고 수감자에게 담배를 판매했다. 225만 원을 받고 담배 8갑(1개비에 1만 4천 원)을 넘긴 혐의다.

교도관들은 “이런 소식을 들으면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말했다. 특히 권혁선 교사는 “이 세계가 좁기 때문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서로 만나고 다 아는 사이인데, 어제 만났던 사람이 좋지 않은 일로 매스컴을 타면 실망감이 앞선다.”면서 “한곳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한곳에서는 파토내면서(잘못을 저지르면서) 교도관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 교도관은 “교도관들이 봉사활동도 하고, 자기 변화에도 힘쓰며, 수감자들에게 미담도 들려주고, 승진에도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아울러 “교도관들의 처우문제도 개선하고, 제도적인 안전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그는 ‘교도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함께 개선될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전쟁터처럼 하루하루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되는 교도소. 교도관들은 처음에는 직장과 직업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직업관을 바꾸면서부터 보람을 느끼게 됐다. 가족과 단절돼 살아가는 수감자들에게 가족을 찾아주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왔다.

또 불우 수감자 가족 돕기 같은 행사로 무기수 자녀에게는 학비도 대주고, 아버지 학교 같은 회복프로그램으로 수감자의 상처를 치유해주면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을 죄인이라고 낙인찍는 것보다 우리이웃이자 형제로 포용해야 하며, 교도소에 있는 동안 체계적인 직업훈련이나 자활프로그램을 받고 사회에 나가서 써먹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태양이 떠오르듯이 교도관과 수용자의 줄다리기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 폭풍 뒤에 들이닥친 거친 물결처럼 둘 사이에 예측할 수 없는 충돌이 지나고 나면, 누군가는 밤마다 악몽을 꾸면서 눈물로 베개를 축축하게 적실 것이다. 혹시나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경계하면서 소리 죽여 흐느낄 것이며, 매일매일 머리도 띵하고 몸도 아파 절망과 슬픔은 배가 될 것이다. 결국 운명의 파고에 휩쓸려 부유하다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교도관의 괴로움이 어찌 수감자만 하겠는가. 하지만 밤마다 가냘프고 수척한 표정으로 쇠창살을 마주하는 이들의 삶이 더 이상 초라해져서는 안 되며, 무작정 난폭하고 질이 나쁘다는 죄를 뒤집어씌워서도 안 될 것이다.

무작정이라고요?

교도관이 수형자의 요구 사항을 무작정 들어주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일이 있어도 기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단 무리한 부탁을 들어달라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요구하면 거절할 수밖에 없어요. 수용 질서가 무너지면 교도소가 걷잡을 수 없이 무능력해지기 때문에 원칙을 꼭 지키죠.

마음이 좋지 않아요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의 집안 사정이 좋아지지 않거나 출소 후 교도소에서 다시 보게 되면 마음이 좋지 않아요. 다시는 들어가지 마세요. 또 면회 온 수용자의 아내가 이혼하자는 소리를 하거나 수감자가 화장실에 오래 들어가 있으면 사고가 날까 봐 초조해진답니다.

사형집행은 없어졌어요

사형은 사형 확정 판결이 난 뒤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법무부 장관이 허가해야 집행돼요. 그래서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이 사형을 꺼리면 그만큼 사형이 이뤄지지 않죠. 사형은 김영삼 정부 때 마지막으로 집행되고 아직까지 한 건도 없었어요.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죠.

사형은 어떻게 집행했나요

사형집행은 주로 봄과 가을에 사형장이 있는 교도소에서 했어요. 교도소장이 사형수의 범죄 사실을 읊어 준 뒤 검사의 참관 아래 교도관이 사형을 집행했는데, 교도관들이 서로 안 하려고 해서 무작위로 차출했답니다. 또 사형은 월요일 오전에만 집행했기 때문에 사형수들은 일요일 오후부터는 잠을 못 잤다고 해요.

교도관의 종류

교도관에는 정복교도관과 사복교도관이 있어요. 정복교도관은 교정직, 사복교도관은 교회직과 분류직이 있죠. 교도소에는 교정직 공무원이 가장 많아서 파워가 세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험을 볼 때는 분류직이 가장 어려워요. 7급 공무원만 채용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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