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강민아 우리동네예술치료센터장

참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 제1회 ‘커뮤니티아트’ 전 ‘닮’이 9월 7일 오후 6시부터 4일 동안 경기도문화의전당 소담홀에서 열린다.

도자기, 그림, 사진 작품을 전시하는데 유명 작가의 작품은 하나도 없다. 아니 반대로,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삶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들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동네건강연구소, 예술공작소 닮이 주최하고, 행복한우리동네의원, 건강한우리동네의원, 우리동네예술치료센터, 오가네 약국, 수원시민신문사에서 후원한다.

21일 오전 수원시 권선구 우리동네메디컬센터 4층 예술공작소 닮 사무실에서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강민아(36) 우리동네예술치료센터장을 만났다.

미술치료사인 강 센터장은 예술공작소 닮 대표이기도 하다. 경희대 미대 도예과를 나왔다. 독일 쾰른대에서 미술치료를 전공했고 부전공으론 정신병리학을 배웠다.

▲ 강민아 우리동네예술치료센터장. ⓒ장명구 기자

- 예술공작소 닮에 대해 소개해 달라.

‘닮’ 자라는 글자가 독특해요.(실제론 ‘닮’이라는 글자 밑에 ‘ㅡ’ 모음이 추가된 모양) ‘다르다’ ‘담다’ ‘닮다’라는 의미가 동시에 있다. ‘다른 것이 담겨서 닮아 간다’는 것이다.

세 가지 뜻이 들어가 있는 글자다.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안병은 원장님이 디자인했다.

일반인들은 정신장애인들이 틀렸다고 한다. ‘저 사람들은 독특해, 틀렸어’라고 얘기하는데 ‘다를’ 뿐이지 ‘틀린’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예술적인 취미가 있는 사람들을 뽑아 재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 예술공작소 닮을 만들었다. 원래 소장인 남편이 일이 생겨 나가면서 내가 닮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은 재정적으로 많이 어렵다. 진짜 되게 어렵다.

- 제1회 ‘커뮤니티아트’ 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처음에 시작한 건 정말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다. 다른 걸 인정하면서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거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보여주면서 ‘나, 이런 사람이야. 그럼 어쩌라구?’ ‘나, 이런 삶으로 살아가는데 너희들하고 다를 뿐이야!’ ‘커뮤니티’는 함께 가는 공동체라는 의미다. 그 안에서 똑같아 진다는 게 아니라 서로 존중해 준다는 거다. 그래서 ‘커뮤니티아트’ 전이라고 얘기를 한 것이다.

그들이 결국 자신의 삶을 커밍아웃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정신장애인들이 용기를 갖게 하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전시회 ‘닮’은 마음이 아픈 작가들의 전시회이다. 모든 사람은 아픔도 생김새도 다 다르다. 그러나 이들은 예술을 매개로 소통해 나가며 닮아갈 수 있다.

작가와 관객이, 이웃과 이웃이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서로를 이해할 때 우리는 모두의 마음을 ‘닮’이라는 그릇에 담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공간, 감정,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해 나가기를, 그리고 그 끝에 서로 닮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고 예술가로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에 이들을 찾아와 진심으로 즐겨 준다면 그 자체로 서로 닮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우리의 시도가 저마다의 가슴에 드리운 마음의 계단을 지워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 그렇다면,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

일반 사람들이 아니라 정신장애인들이 준비한다는 것이다.

선생님도 참여하는데 그분 사진 작품도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아픔을 담은 작품이다. 자신의 아픔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아픔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것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거다.

어머니들이 정신장애 아이들을 키우면서 얼마나 힘들겠냐? 아이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면서, 아이를 키울 때 마음을 담은 작품을 보여 주려고 한다. 공동으로 된 거라고 할 수 있다.

엄마가 지적장애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아픔이 있는 엄마들이다.

병동에 있던 아이들이 도예교실을 하는데 어머니들도 도예교실에 참여하다 실력이 늘면서 함께하게 됐다. 어머니들이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마음을 보여주자, 그래서 전시회에 참여하게 됐다. 도예뿐만 아니라 회화를 하는 아이도 있다.

도예든 회화든, 하나 하나 처음부터 과정을 밟아 하는 게 아니다. 정말 라이브하다. 기술적으로 뭔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쌩’ 것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되게 많다.

너무 힘들었던 게, 너무 초짜를 데리고 하니까, 배운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쌩’ 것을 보여 주려고 하니까 어려웠다.

도자기란 것이 굉장히 예민하다. 성형, 초벌, 재벌을 한다. 성형은 두께, 수분이 안 맞으면 깨진다. 애기 다루듯이 해야 한다.

성형을 했는데 실금이 간 걸 확인하지 못해 깨지고 말았다. 다시 성형을 해야 한다. 재벌에서 쩍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너무, 너무 힘들었다.

다르다는 건, 어쩌면 굉장히 미숙할 수 있다. ‘이게 뭐야? 연습생 꺼 아냐?’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나, 완벽하지 않아. 팔이 잘린 게 아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잘렸어.’ 그것과 똑같다.

회화하는 아이의 작품도 재밌고 좋다. ‘관계사고’가 있는 아이 작품이다.

관계사고란 옆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내 욕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망상을 하는 증상이다. 망상을 하다보면 환청까지 들린다. 그림 속에 자기 아픔이 들어나 있다. 재밌는 작품이다.

다른 전시회와 다른 것은 어쩌면 미숙해 보이고 어쩌면 ‘뭐야?’라는 물음표를 찍는 작품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라는 것이다.

- 이번 전시회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한 분 같은 경우는 소아마비로 인해 몸의 반쪽을 사용 못한다. 불편하다. 걸음도 뒤뚱거리며 걷는다. 반쪽이 불편하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도자기는 두께나 균형을 잘 맞춰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 맞추기 위해 노력했는데 성공했다.

캐드 자격증도 있고 사회에 나가 일하려고 한다. 그런데 ‘너, 그만둬!’ 열심히 하는데 잘린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격증도 있는데 인정도 못 받고 일을 할 수 없구나.’ 좌절을 너무 많이 겪어서 내적 분노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도예를 하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 한 분은 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집에서 인정을 못 받은 거다. 아버지를 무서워 한다. 대학까지도 나왔는데 항상 도태되고 할 수 없다는 것에 좌절했다.

도자기를 하면서, 엄청나게 많이 했는데, 2점 건질까 말까. 이게 삶이라는 것이다. 열심히 했는데 깨지고 깨지고. 그러나 ‘다시 시작하면 돼’ 용기를 부워 줄 수 있는 것이다.

2점이 있는데 제대로 나올라나 모르겠다. 하도 속상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첫 전시회라, 정말 시범적으로 하는 것이라 완벽하지 못하다. 어쨌든 그들의 삶이다. 2회, 3회 전시회를 거쳐 나아지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좌절하기도 하고 심지어 사업에 실패해서 자살도 한다. 한 번 실패가 모든 실패가 아니라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전시회를 통해 허점이 보일 수도 있다. 다시 2회, 3회 전시회를 하면서 재활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재활을 위한 전시회다.

안병은 원장님이 한 사람이 재활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인생을 걸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 그럼 이번 전시회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4명이 전시회에 참여한다. 한 사람은 중간에 문제가 많아서 나갔지만 다시 돌아올 거라 기대한다. 어머니들, 선생님들 작품도 있다.

- 주로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나?

그림, 도자기, 선생님의 사진이 전시된다.

애초 한 사람당 각 5점씩 하려고 했다. 2점이나 나올까 말까. 이건 나와 봐야 안다.

근데 재밌다. 그들이 한 작품이라도 ‘이것을 내가 만들었구나!’ 기뻐한다면...

- 반면에 보람도 클 것 같다.

선생님도 그렇고,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선생님들도 그렇고, 전시회 준비위원들고 그렇고, ‘전시회가 오픈됐을 때 눈물이 펑펑 나올 거 같애’ 하시더라.

정말, 진짜 그때 눈물이 나올 거 같다. 힘들기도 했지만, 그들이 보여 져야 되고,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들이 보는 시각이 변하였으면 좋겠다. 다름 사람들도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 앞으로의 포부나 전망은 어떻게 보고 있나?

작품 활동도 하면서, 작품을 팔아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전시회를 계속 열어 줘야 하는 것이다.

지적장애인이라던가 단순 노동만 할 수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은 식기 같은 것을 만들어 판매하면 된다. 사회적기업 우리동네와 연계해서 판매를 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려는 게 ‘닮’이다.

나중엔 협동조합이 됐으면 한다. 그들이 채워 가는 노동조합. 영화 ‘위캔두댓’에 나오는, 그런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

부모가 떠나가면 지적장애인들은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살아가는 받침을 만들어 주고 싶은 거다.

-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많이 도와 주셨으면 좋겠다. 관심을 가져주고 많이 도와 달라.

닮을 운영하는데 재정적인 게 너무 힘들다보니 포스터, 초대장, 팜플릿까지 제가 만들었다. 100만원이 넘게 나와서 수작업으로 프린터기로 뽑았다.

작품 사진은 8월 초에 찍으려고 했는데 작품이 계속 깨져서 다음 주에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전시회 때 보여 줄 수 있도록.

되게 어렵다. 정말 많이 어렵다.

이게 시작이기 때문에 이 안에서 또 꿈도 갖는 거다.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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