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수경 작가

박영재 열사, 통합진보당 부정경선사태 관련해 당원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요구, 통합의 정신으로 돌아와 달라 외치며 2012년 5월 14일 분신했다. 결국 39일 만인 6월 22일 운명했다. 그리고, 4년 후인 2016년 5월 24일 민족민주열사로 추서됐다.

박영재 열사 서거 11주기를 즈음해, 박영재 열사 평전 ‘마석, 산70-7번지’가 출간됐다. 평전은 이수경 작가가 집필했다.

이 작가는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자연사박물관’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첫 소설집 ‘자연사박물관’을 냈다. 다시 3년이 지나, 2023년 5월 단편소설집 ‘너의 총합’을 출간했다.

그리고, 동시에 박영재 열사 평전도 낸 것이다. 평전은 이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작가를 지난 5월 25일 오후 책고집에서 만났다. 평전을 내고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이날은 단편소설집 ‘너의 총합’의 첫 북 콘서트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이 작가는 나이 50에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굉장히 늦은 나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원래 대학도 문예창작과를 가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다른 과에 들어갔다. 내가 87학번이다. 그때 87년도에, 대부분 대학생들이 그렇듯이, 운동권 동아리에, 노래패에 들어가면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학생운동을 꽤 오래 하는 분위기였고, 나도 한 6년쯤 했다. 그러다 지역으로 나와 활동을 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글 쓴다는 것을 다 잊어버렸다. 결혼도 같이 활동하는 동료와 했다. 그러다 애들을 낳고 하면서, 힘들어서, 아마 도망친 것이라고나 할까!

그때서야 옛날에 글 쓰던 게 생각이 났다. 40살이 넘었을 때였다. 이제 글을 좀 써 봐야지! 몇 년이면 등단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꽤 오래 걸리더라. 등단하기까지 한 10년 걸린 셈이다.”

이 작가는 처음 박영재 열사 평전 제의를 받고 “내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박영재 열사 추모사업회 임미숙 회장을 만나서 들은 얘기 때문이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박영재 열사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더라. 또한 이야기를 들어주려고도 하지 않았고,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더라. 임 회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것을 누군가 해야 하는데 누가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다른 하나는, 내가 활동을 접기는 했으나 어찌 됐든 아직도 거기에는 활동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힘드니까 도망쳐 나왔다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부채감 같은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도망쳐 왔지만, 어떻게 하면 그래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튼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으니, 글을 통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작가가 언급한 ‘부채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우리가 지나온 시대가 80년대이다. 어떤 분들은 정말 열심히 싸우고 함께하며 지내온 것이고, 한편으로 그러지 못한 분들은 나름대로 부채감, 죄책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을 다 그렇게 지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부채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여전히 활동하시는 분들보다 더 많을 수 있다. 나처럼,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접은 분들의 미안함 같은 것들을 주변에서 되게 많이 확인했던 것 같다.

그 시절을 지나온 분들이 갖는, 우리 세대의 보편적인 감수성일 것이다.”

이 작가는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라 힘들어 죽을 뻔 했다”라고 엄살을 떨었다. 평전을 쓰면서 “다 어려웠던 같다”고도 했다.

“책을 어떤 방향으로 집필할지를 가지고 많은 논의를 했다. 왜냐하면, 박영재 열사의 죽음에는 굳어진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겼으면 좋겠는지 많이 들어봤다. 굉장히 다양했다. 처음에는 대부분 이 책을 통해 열사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사건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죽음의 진실을 밝힌다? 이전에도 다른 책들에서 많이 언급했기 때문이다. 굳이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진실을 알고 계신 분들도 많다. 오히려, 이렇게 쓰면 박영재 열사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건도 중요하지만, 박영재라는 한 노동자, 한 인간에 대해, 그분이 왜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지 들여다보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고 봤다.

또한, 10년이 지났음에도 내부에서조차 아직 정리를 못하고 있었다. 통합진보당 사건도 그렇고, 박영재 열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렇고. 당시, 관련된 분들의 평가가 있으면 좀 들여다보고 싶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그 이후에 평가한 게 없더라. 그것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정리가 안 돼 있는 것이.

하물며, 그 당시에 관련된 분들조차도 열사냐, 아니냐 하는 부분에서 시각 차이도 좀 있다는 걸 알았다. 굳이 책을 써야 하나? 굳이 책이 나와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셨다. 내부에서조차도 합의된 것이 많지 않구나 하는 걸 느꼈다.”

이 작가는 평전을 쓰기 전에는 박영재 열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단다. “10년 전에 분신하셨을 때 건너 건너서 들었다”고, “그런 일로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제 책을 쓰게 되니, 어떻게 죽을 수가 있지? 어떻게 목숨을 내던질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권의 공격이나 탄압에 저항한 것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정당 내부에서 일어난 문제로 정당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잘 안 됐던 것이다. 감정 이입이 안 되더라.”

그래서, 이 작가는 박영재 열사처럼 활동하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분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노조 활동이나 당 활동을 하고 있는지, 그분들은 박영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고 싶었다.

나 같은 경우는 노동자였던 적이 없다. 어떻게 보면 노동자 계급이었던 적이 없다. 그냥 학생이었다.

무엇인가를 모두 내 힘으로 하고, 내 운명이 나의 손에 달렸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그럭저럭 살았었다. 때문에 당이든 뭐든 떠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분들을 만나면서 이분들은 이것이 정말 운명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조합을 만나고, 당을 만나면서, 이분들이 느꼈던 것은 ‘이런 세상도 있구나!’, ‘이런 세상이 오면 내 운명이 바뀔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분들은 자신의 하루를 정말 열심히 사시고, 다시는 전에 살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봤던 세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돌아갈 곳이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그분들은 돌아가는 그곳이 안락한 가정이나 부모의 품, 이런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 작가는 박영재 열사의 친척들과 동네분들을 만난 이야기도 들려줬다.

“박 열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자기가 일을 하면서 아버지 빚을 다 갚았다. 노동자로 쭉 살면서 동생들도 돌보고, 친척들이 아프면 친척들도 돌봤다. 어머니도 끝까지 돌봤다. 자기가 다 하는 것이다.

무언가 도와주어야 한다가 아니다. 모든 일을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박 열사가 나중에 활동할 때도 항상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박영재 열사와 함께 버스노조 활동을 했던 노동자도 만났다.

“통합진보당 부정경선사건이 일어난 때였다고 한다. 그분이 수원에서 버스기사로 일하시다가 안성으로 이직을 하셨는데, 안성까지 찾아와서 부정경선사건 얘기를 했다는 거다. 경선사태는 이렇게 된 거고, 진실은 그게 아니고,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매스컴에서 계속 떠드는 얘기도 있고 해서 듣기가 싫었단다. 또 찾아와서 또 이런다 하면서 외면했다고 한다. 그런 얘기 그만하고 그냥 밥이나 먹고 가라고 했는데, 그때 표정이 너무나 절망적이었다는 거다.

그때 그 얘기를 좀 들어줄걸! 하시면서 막 우시더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정말 자기가 해결해야 하고, 자기 일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막 찾아다니면서 그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박영재 열사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이 작가는 평전이 “박영재 열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박영재 열사 같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수많은 열사들의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1970년대 전태일 열사, 2000년대 박영재 열사. 박영재 열사가 전태일 열사급인가? 약간 갸우뚱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다른 열사들과 박영재 열사를 같이 놓을 수 있느냐? 책을 쓴 나로서는 같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이 작가는 “박영재, 이분을 진보정당, 진보세력 간의 분열로 목숨을 버린 한 사람, 한 노동자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이 책에 거는 희망은 그것인 것 같다. 진보, 진보정치 전체의 대의 속에서 목숨을 바쳤다는 것은, 예전에 우리가 독재 정권과 싸우면서 목숨을 바친 것과 똑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책을 쓰고 싶었고, 그래서 수많은 노동열사들이나 수많은 역사적 상황들을 넣었다. 그것이 잘 연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작가는 오는 9일(금) 저녁 7시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박영재 열사 평전 ‘마석, 산 70-7번지’의 첫 북 콘서트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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