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일찍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지난해에 물꼬를 제대로 터주지 않아 물에 잠긴 농작물이 몽땅 썩어 버린 아주머니는 미리부터 물길을 내주기에 바쁘고, 아파트 관리소 아저씨들은 무너지려는 곳은 없는지 막힌 곳은 없는지 살피느라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해마다 찾아오는 것이련만 올 때마다 긴장시키며 분주하게 만드는 것이 장마다.

둘째 아이의 사춘기도 장마처럼 찾아왔다.

사춘기가 찾아오면 2차 성징과 더불어 본인도 어찌하기 힘든 몸과 마음의 혼란을 겪을 거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에 물꼬를 터주려고 미리부터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의 생각을 살피면서 마음에 앙금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형과 동생 사이에서 소외감을 없게 하려고 뭐든 똑같이 나눠주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큰 태풍을 몰고 올 줄은 몰랐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아이는 선배들의 지시아래 다른 학교 아이와 주먹다짐을 했다. 수컷들의 영역 싸움에 휘말린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주먹다짐은 심심찮게 엄마를 학교로 불러들였고, 그때마다 아이는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반성의 빛을 보였다.

아이를 믿어 주라는 전문가의 말씀을 떠올리며 애써 웃음 짓는 엄마에게 아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데 그때뿐이었다. 집에서는 그토록 어여쁜 아이가 문밖에만 나서면 욕설과 주먹다짐으로 친구들을 괴롭혔다. 내 잣대로는 도저히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행동이었다. 그래서 충격은 더 컸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눈빛에 독기가 서리고 엄마 마음에 불신이 커 갈수록 아이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안아 주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밀려오는 배신감은 아이를 향한 마음에 벽을 쌓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이 쑥대밭이 된 건 모두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보다 더 많이 아이를 사랑했고 지도를 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아이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그렇게 하면 기분이 어떤지 나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이의 행동은 올바르지 않았고 내 아들이라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됐기 때문이다. 아이의 마음을 보기 전에 나는 내 잣대를 들이댄 채 그것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린 오랜 시간 동안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며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를 쳐다보니 아이가 슬그머니 엄마를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발 내 말 좀 들어 보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며 온몸을 떨고 있었다.

“주먹을 쓰면 기분이 어때?”
부드러운 말투가 가져간 내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아이의 마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내가 강하게 느껴져. 애들이 내 모습을 보고 벌벌 떨면 내가 최고인 거 같아.”
“그럼, 욕도 그런 마음으로 하는 거야?”
“응. 내가 욕을 안하면 애들이 날 깔보는 거 같아. 내가 세 보이려면 주먹도 쓰고 욕도 해야 하는 줄 알았어.”
“그랬구나. 주먹이 세다고 강한 건 아닌데...... 우리 아들은 주먹이 세야 강하다고 생각했나 보구나? 아들, 엄마가 왜 욕을 하지 말라고 했는지 아니?”
“글쎄. 그냥 엄마가 하지 말라니까 안하려고 했는데 자꾸 나도 모르게 화가 나. 그럴 때 욕을 하면 좀 가라앉더라구.”

“그랬구나. 근데 다시 또 하고 싶고 그러지 않던?”
“어떻게 알았어? 그래서 더 심하게 욕을 하게 되던데......”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거야. 당장은 갈증이 해소되는 거 같은데 목이 더 타서 갈수록 더 많은 물이 먹고 싶어지잖아. 더구나 욕은 상대방한테 가기 전에 내 영혼을 먼저 할퀴고 가. 그러니까 욕을 자꾸 하게 되면 내 영혼이 망가지지. 엄만 우리 아들 영혼이 상처투성이로 망가지는 게 싫은데, 어쩌지?”
“미안해요. 이젠 욕 안 할게요.”
“그래, 말도 습관이거든. 난 우리 아들이 좋은 습관으로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어.”
아이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니 아이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태풍이 어부들에게는 수확의 기쁨을 안겨다 주듯 A급 태풍을 몰고 온 아이의 사춘기는 그렇게 아이를 키우는 거름이 되었다. 더불어 엄마의 인성을 키우는 데 한몫을 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시련이 어디 있으랴.

비록 장마가 할퀴고 간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아이 스스로 그 잔해를 말끔히 치울 거라 기대해 본다.
 

이상희 수필가

❒충남 서산 출생

❒1993년 [문예사조]에 수필 [말로만 신토불이]로 등단

❒수상경력
 TV동화 행복한 세상 단행본(샘터)에 [그래, 잘했구나] 수록,
서울시 지하철 스크린도어 공모에 [존재의 이유] 당선,
대구일보 주최 ‘제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에서 장려상 수상 등

❒사)오산문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現, 오산 소식지 명예기자 / 오산시 문화관광 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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