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포고령 실화시리즈 제2화

이 수기는 미국 신은미 교수의 제의로 묻혀 있는 현대사 바로알기 차원에서 10회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이 글은 페북 공유는 가능하나 언론 연재는 필자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수꼴언론에 무단도용 당함을 방지하기 위해섭니다.[글쓴이의 말]

▲ 목봉체조 - 하루 수백 회로 인간의 고혈을 빨았던 고문기구였다. ⓒ이적 목사

밤이 되었다. 부대 뒤로 엄습하게 부엉이가 울어 댔다. 여기가 어디인가를 알아야 했으나 어느 도시, 어느 부대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옆 사람과 대화도 나눌 수 없었고 조교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한 내무반에 50여명이 도열해 섰으나 일체의 대화 금지와 내무막사 무단출입 금지가 내려진 상황이었다.

오후부터 줄곧 마루 3선에 정렬하여 죽음 같은 침묵만 진행될 뿐이었다. 누군가가 차렷 자세에서 건들거렸다. 그는 조교에게 불려 나갔고 3명의 조교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였다,

어디서 끌려 왔는지, 왜 왔는지 모를 동료들은 한결같이 머리를 깎이고 초췌한 군복차림에 등짝에는 커다란 고딕체로 ‘삼청’이라는 두 글자가 찍혀 있었다.

밥이 왔다. 혀끝에서 군침이 맴돌았다. 주검 같은 소굴 속에서도 미각이 동하였다. 조교들이 배식하였다. 허멀건 국물과 반찬 두 개, 쌀보리가 섞인 잡곡밥, US가 찍힌 군용 스푼으로 떠먹으면 채 세 숟갈이나 될는지. 그래도 배속에서는 이미 그것들을 받아먹을 준비가 가동 되어 있었다. 한 줄로 서서 밥을 배급 받았다.

삼선에 줄을 지어 차례로 앉아 조교의 식사개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 기다림을 참지 못한 동료 하나가 국물을 한 숟갈 떠먹다가 (딸깍)소리를 냈다.

“누구야! 방금 밥 숟갈 무단으로 든 놈 나와!”

그는 사색이 되어 튀어 나갔고 조교의 손에 들린 곤봉이 등짝을 내리쳤다. 그리고 그는 “살려주세요!”를 외쳤으나 마구잡이로 끌려나갔다. 그가 끌려나간 후 빨간 모자 조교가 말했다.

“식사 시간 5초 주갔어! 자, 식사 개시!!”
“감사히 먹겠습니다!”

복창이 떨어지자마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건 식사가 아니었다. 스푼 없이 손으로 짓이겨 입으로 박아 넣는 사람, 스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밥을 쑤셔 넣는 사람, 식기통을 입으로 붓는 사람.

조교는 여유스럽게 하나, 둘ᆢ, 셋, 넷, 다섯을 세었고 “동작 그만!”을 외쳤다. “동작 그만!” 뒤에도 스푼을 움직인 서너 사람을 불러내더니 총 개머리판으로 등짝을 내려쳤다. 그들은 맥없이 고꾸라졌다.

식기에 밥이 남아 있는 사람들 앞으로 짠밥통이 지나갔다. 전부 짠밥통으로 밥은 낙하되었다.

그날 밤 식사군기가 나쁘다는 핑계로 발가벗긴 채 연병장을 기어 다녔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백 미터 전방 미루나무까지 낮은 포복 왕복 10초 준다! 실시!!

빨간 모자들은 기어가는 동료들 등짝을 널뛰기 하듯 건너뛰며 곤봉으로 내려쳤다.

“이 새끼들 구더기냐? 왜 이리 느려!”
“전원 기상!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대가리 박는다 실시!”

그들은 폭행전문가처럼 자정이 되도록 철저히 짓밟았다.

내무반으로 군가 악다구니를 쓰며 지나가다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원주 38사단이었다. 뒤로 펼쳐져 있는 산은 치악산이었다. 다음날부터 죽지 않을 만큼의 밥과 죽지 않을 만큼의 폭행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단장이 5백여명의 민간인들을 도열시켜 놓고 훈련성적이 좋은 사람은 a, b, c급 가릴 것 없이 4주 후면 출소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4주 후면’ 그것은 뻥일 것이었다.

나는 ‘비급’을 받았다. 계엄사 분류심사에서 중령이 내 서류를 보더니 볼 것 없다는 듯이(개새끼 나가!)가 끝이었다. 그리고 비급이라 판결했다. 반론권도 변호도 없었다.

경찰이 써놓은 소견서 한 장이 지옥 문턱을 오르락거리게 했다. 에이급을 받은 사람은 교도소로 간다고 했다. 차라리 에이급을 받아 교도소로 갔더라면 하고 아쉬움이 가득 찼다.

저녁에 총 볶는 소리가 났다. 탈주자가 생겼다고 했다. 모두가 연병장에 집합했다. 탈주자를 꿇어앉히고 이놈들은 사형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들은 끌려가고 새벽이 올 때까지 연병장에 뒹굴었다. 조교들의 곤봉과 옷이 땀으로 얼룩졌다.

초주검이 되어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담요 속에서 소리 없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조교가 듣지 않았다.

폭력적 훈련은 낮밤 구분없이 일주일 내내 진행되었다. 피티체조 백 회, 목봉체조 백 회, 틀리면 이 백번. 조교들은 목봉 위에 올라 앉아 히히덕 거렸다.

어깨가 까져 피가 얼룩졌고 주먹 쥐고 푸시합으로 손등이 벗겨졌다. 우리의 고통은 조교들에게 즐거움이었고 조교들의 즐거움은 우리에겐 지옥이었다.

이 주째 되던 날, 행정반 조교가 나를 불렀다. 간이 들썩 내려앉았다. 심상치가 않았다. 또 뭘까? 놈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빠트리지 않고 감시 했다. 그건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나섰다. 빨갱이 어둠속 어둔 장방형 낭하로 나는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저 끝은 어디일까? 공포감이 밀려들었다.(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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