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산스님 6.15경기본부 홍보위원.

먹먹한 감동으로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여름 징역살이」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담담히 고백하고 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기약 없는 무기수로서 20년 20일 동안 괴롭고 힘든 수형생활을 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스한 연민을 잃지 않은 선생님의 마음, 타인에 대한 증오를 부끄러워하는 그 마음과 경건한 고백은 자유의 몸으로 살고 있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선생님은 ‘증오’라고 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단지 ‘투정’일 수도 있다. 좁은 감방 안에서의 증오는 그저 ‘싫다’는 감정 이상이 될 수 없다. 그것 때문에 상대를 해치는 경우까지는 벌어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증오’는 ‘너와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극단적인 마음이 되어 끔찍한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심지어 세계 최고의 경제·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에서조차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종교와 인종을 차별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 코미디 같은 현실이다.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땅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마주하는 ‘증오의 현장’은 뒷걸음치는 추위를 붙잡고 더욱 가슴을 시리게 하고 있다. 무엇이 그들에게 그토록 섬뜩한 증오를 심어주었는지 궁금하다. 무릇 최고의 지성을 뽐내던 변호사들의 후안무치한 작태가 그 원인인지 궁금하다. 거짓과 뻔뻔함에 꼼수까지 치장한 독재자의 딸을 향한 맹목적이고 삐뚤어진 애정 때문인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 상식적으로는 여전히 의혹을 거둘 수 없지만 ― 북한에 의해 VX가스로 독살당한 것으로 드러난 김정남 피살사건 역시 증오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누구든간에 자기의 행복을 얻겠다고 남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면 그는 원한심에 쌓이고 얽매인 나머지 결코 원한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라고 하며, 증오가 원한을 낳고 원한이 끝없는 윤회의 인과가 되어 서로를 해치고 있는 중생들을 경계하고 있다. 원한을 품고 상대방을 증오하게 된다면 스스로 지옥을 만들고 지옥의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지몽매한 우리 중생의 입장에서 원한과 증오를 거두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참회와 사죄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종용하는 이 나라 외교부의 신념도 없고 배알도 없는 작태를 보고 치미는 분노는 여전히 다스릴 수 없는 감정인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 자비롭게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받은 고통을 다른 사람이 다시 받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머리는 말하고 있지만, 차가운 가슴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자괴감을 미처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비와 연민만이 증오와 원한의 악순환을 끝맺음 할 수 있음을 알기에 용서와 화해를 일구는 사람이 되고자 눈 한 번 질끈 감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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