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노동자 박덕제.

며칠 전 문영심 지음의 ‘이카로스의 감옥’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주요 내용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 수 있는 이른바 ‘통합진보당 부정 의혹과 이석기 국회의원 내란음모 사건’의 진실을 담은 내용이다.

‘이카로스의 감옥’을 처음 접하고 책장을 넘기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이 답답함은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순간까지도 계속됐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허전하고 씁쓸하고 공허하고 여전히 답답하다.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데도 이석기 의원과 옛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나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고 5월부터 8월까지 기억을, 그리고 2013년 8월을 더듬으려한다.

당시 필자는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정책실장이라는 직책으로 노조 간부였다. 또한 통합진보당 당원으로서 화성지회 분회원이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비례와 지역을 합쳐 국회의원 13명을 당선시킨 쾌감을 미처 느끼기도 전에, 부정선거 의혹은 필자를 포함하여 현장의 당원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뭔가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주었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하고 판단하기 이전에 중앙 언론은 ‘부정의 딱지’를 통합진보당에 덧씌웠다. 이때 민주노동당 창당부터 통합진보당에 이르기까지 당원으로서 필자의 행적을 잠시나마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했다. 결론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실’이었다.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거짓인지....

2012년 6월 말경에 진행된 통합진보당 당직자 선거에 당 대표로 출마한 강기갑 후보가 선거운동 차원에서 화성지회에 방문한 것을 기억한다. 당시 강기갑 후보는 화성지회 노조 간부와의 간담회에서 ‘본인이 대표로 당선돼야 당이 쪼개지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지금 필자는 후회한다. 왜 그때 ‘정말 당신이 당 대표가 되면 당이 쪼개지지 않는 것이냐? 약속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7월 말 신당권파에 의한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당 제명이 실패로 돌아가고 신당권파가 당권을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면서, 함께 활동하던 현장당원들 중 몇 명이 탈당을 권고하며 탈당신청서를 작성하고 다녔다. 공식적으로 탈당을 선언하기 두 달 전부터 말이다. 그리고 9월 통합진보당 탈당을 공식선언한다. 이후 그들은 정의당 당원이 되었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통합진보당 부정 의혹 사건이 있기 전만 해도 중앙의 당권과 관계없이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함께 울고 웃으며, 술잔 기울이며 진보정치 승리를 위해 노래를 불렀었다. 진실이 밝혀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으나 그 상처는 아직도 가슴 언저리에 남아있다. 지금 그들을 보면 겸연쩍다.

2013년 8월 하순 이석기 의원조차도 자신이 왜 내란음모의 당사자인지 모르는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각종 신문과 TV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것에, 필자는 황당했고 받아드릴 수 없었다. 모두가 RO이고 종북이라고 말해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노조 간부로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정책실장으로서 국정원에 의한 내란음모 조작사건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조합 홍보물을 통해 연일 선전하였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조작에 의한 거짓, 그것을 폭로하고 진실을 보게 하고 싶었다.

그러던 가운데 선전 내용에 대한 삭제 압박이 들어왔다. ‘조합 선전 홍보물이 통합진보당 선전물이 아니다. 이석기 옹호 선전 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용을 노동조합 함성 소식지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필자에게 붙여진 별명은 RO와 종북이다. 듣기 좋은 말도 100번 이상 들으면 싫어지는 법이다. 처음에 그렇게 불렀을 때는 기분도 나쁘고 짜증도 나고 스트레스였다. 누구 하나 잘못 걸리면 주먹다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두려움, 가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편견, 뭐 이런 것 때문은 아닐까?

시간은 흘렀다. 그들은 지금도 술 한잔 마시거나 기분이 좋으면 가끔 필자의 이름을 부르기보다 RO와 종북이라고 웃으며 칭한다. 그러나 기분은 나쁘지 않고 오히려 좋다. 세상이 변해서? 아니다. 필자를 이렇게 불러주는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가고자 하는 길, 그 길을 믿는다”고 응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카로스의 감옥’에서 대중에게 읽히고 싶은 것은 ‘진실’이다. 한쪽 면을 보고 그 반대 면을 ‘이렇다’고 예단하는 것은 거짓이다. 신당권파에 의한 통합진보당 부정 의혹 사건도 국정원에 의한 내란음모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옛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은 대중매체(신문, TV 뉴스)에 의하여 마녀사냥 당했으며 국가 권력에 의해 해산과 구속이 되었다.

이석기 의원은 항소심에서 징역9년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으며 통합진보당은 내란음모 사건과 연계되어 있다고 추정되어 강제로 해산을 당했다. 억울하고 분하다. “유신독재,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21세기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 30년이 넘었는데 무슨 조작이야. 말도 안 돼! 그런 것은 예전 쌍팔년에나 가능한 일이야. 지금 어떤 시대인데!”라고 이야기 하며, “그러게 잘하지. 왜 정권에 잘못 보여 가지고, 너희는 그렇게 당해도 싸!”라고 이야기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2016년 한 해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이야기할까?

최근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전국이 요동치면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비망록)가 공개되었다. 수많은 내용 중 눈에 띄는 것은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하여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내용이다. 없는 간첩도 만들고 합법정당을 해산시키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콘크리트 벽(박근혜 권력)에 균열이 생기고 벽이 무너지고 있다. 벽이 무너지고 나면 그 안에 갇혀 있던 진실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진실은 어느 한 곳에 가두어 둘 수 없다. 진실은 승리할 수밖에 없다. 진실은 언젠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로스는 크레타 섬을 탈출하다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무모한 혈기에서 나온 “무의미한 행동” 내지는 “파멸적인 행동”에 대하여 경고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기도 하며, 권력에 대한 무조건 복종 내지 순응하기를 권유한다.

그러나 ‘이카로스의 감옥’은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이 가고자 했던 길과 행동에 대해서 반대로 해석했다.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높고 낮음에 대하여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는 삶이 아닌 도전하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 분단 현실에서 금기어가 되어 버린 자주·통일의 외침이 무의미하거나 무모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이해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이,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끝으로 ‘아키로스의 감옥’은 두려워하지 말고, 진보정치를 갈망하는 민중을 믿고 힘찬 날갯짓을 계속하기를 원한다. 이제 함께할 수 있어야 하며 진실을 향한 두드림에 답을 해야 한다.   


 

기아노동자 박덕제

전 민주노동당 화성시위원회 위원장
전 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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