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노동자 박덕제.
317일.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고인이 되신 백남기 농민께서 병상에 누워 계셨던 일수이다. 보수언론과 정부는 한 농민이 집회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백남기 농민의 쓰러짐은 이 땅에서 농촌을 지키며 삶의 터전을 가꾸며 살아가는 300백만 농민들의 쓰러짐이다.

지난해도 그렇고 올해도 풍년이다. 그러나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풍년이 달갑지만은 않다. 올해 수확하는 산지 쌀값이 작년보다 무려 20%나 대 폭락할 것으로 예견되기 때문이다. 이는 30년 전 쌀값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농사의 재배작물 중 중요부문이 쌀농사이다. 쌀값이 무너지는 것은 농사의 기본이 무너지는 것이다. 어찌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있는가? 작년 민중총궐기에서 농민들은 밥쌀 수입 반대와 잘못된 정부정책에 항의했던 것이다. 돌아온 것은 살인적인 탄압과 폭력이었다.

올해 8월 대기업인 LG가 새만금산업단지 내 23만평 규모의 땅에 올해부터 22년까지 7년간 3,800억 원을 들여 ‘스마트 바이오 파크’를 조성하고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생산할 계획이라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대기업의 진출은 생산품종의 과잉공급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이렇게 되면 중소, 영세 농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결국 대기업의 진출로 농업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생산단지와 생산종자 재료 등의 주인은 재벌이고 농민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이제 농촌은 자본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와 잘못된 정부정책 그리고 대기업의 농촌 진출로 이해 농민들의 불만과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 9월 22일 정부의 수확기 대책을 촉구하며 벼 갈아엎기, 농기계 시위 등 농민대회가 개최되었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10월 5일에는 ‘청와대 쌀 반납선언’을 하기 위해 수확한 쌀을 가지고 서울로 상경하는 농민들을 한남대교에서 무차별하게 탄압하기도 했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가장 기본적 요소는 입는 것, 먹는 것, 사는 것 즉, 의식주(衣食住)이다. 이 중 음식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산업이고 문화이다. 농업이 없는 2~3차 산업의 발달은 ‘모래 위의 성’과도 같다. 지금 외국 농산물 가격이 싸고 구매력이 있다고 해서 수입하는 농산물을 계속해서 증가시키면 국내 농업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농업이 되돌릴 수 없이 붕괴되고 파괴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먹을거리 전쟁이 현실화될 수 있다.

농민들의 저항과 투쟁을 그들만의 이해와 요구에서 비롯된 것으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먹거리를 지키는 것은 2~3차 산업의 발전을 더욱 굳건히 하는 길이다. 더 나아가 4차 산업(디지털, 빅테이터, 인공지능, 3차원(3D)프린트 등)의 기틀을 마련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지금 도시, 농촌 구분 없이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나 농촌은 30~40대의 젊은 청년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는 농업 발전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농촌 복지환경이 턱없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더불어 수입 농산물을 제한하고 복지환경을 개선하는 농업정책이 필요하다.

백남기 농민께서 사망한 지 벌써 보름이 지나고 있다. 아직도 장례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차가운 영안실에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무차별한 탄압과 폭력으로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빼앗아 갔음에도 책임자 처벌과 사과 한마디 없다. 또한 경찰과 검찰은 과잉진압(물대포)으로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진행하겠다고 한다. 경찰과 검찰의 행동에 수많은 국민들은 동의할 수 없으며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가장 주요한 모토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국가 폭력에 의해 존엄이 존중받고 대우받을 권리가 파괴된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새롭게 구현되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 절실하다.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들녘. 해가 뉘엿뉘엿 들녘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져들 것이다. 그러나 그 들녘의 풍요로움을 느끼기도 전에 깊은 한숨을 내쉬는 슬픔과 분노에 찬 농민들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백남기 농민의 영면과 정부의 진실한 사과 그리고 책임자 처벌이 조속히 진행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아노동자 박덕제

전 민주노동당 화성시위원회 위원장
전 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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