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2016년 9월 25일은, 저에게 무척 긴 하루였습니다.

칠순을 맞은 어머님의 생신잔치를 위해 오전에 음식점을 보러 다녔습니다. ‘100세 인생’이라는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시대, 여전히 젊고 고우신 어머님께 추억이 될 만한 칠순잔치를 안겨드리기 위해 즐거운 고민을 하며 오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점심이 지난 시간, 속보와 문자가 휴대폰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백남기 어르신께서 운명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백남기 어르신은 작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참석하셨다가 경찰이 정면으로 겨눈 물대포에 두개골이 함몰된 채 무려 317일을 의식불명 상태로 사경을 헤매고 계셨습니다.

경찰버스가 겹겹이 둘러싸고 시민의 출입마저 통제하고 있던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운명하신 그 전날이 바로 백남기 어르신의 칠순 생일날이었답니다. 기억하기도 싫은 그날, 잔인한 국가폭력이 평생 농사를 지어온 칠순 농민에게 물대포를 정면으로 겨눴던 그날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백남기 어르신의 자녀분들도 저처럼 들뜬 마음으로 아버지의 칠순잔치를 준비했겠지요.

칠순 농민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은 곧 ‘우리 농업의 죽음’입니다.

2015년 11월 14일, 평생 농사를 짓던 전국 곳곳의 농민들이 ‘민중총궐기’에서 외쳤던 구호는 너무나 간명했습니다. 10대 요구안의 첫머리에 놓였던 구호는 바로 ‘밥쌀 수입 중단’과 ‘쌀값 공약 21만원 이행’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21만원 보장을 약속하며 우리 농업을 살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 17만원이던 쌀값이 되려 15만원으로 폭락한 상황에서 백남기 어르신을 비롯한 전국의 농민들은 서울로 올라왔고, 이들을 맞이한 것은 경찰의 살인적인 폭력진압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올해, 쌀값은 13만원대까지 끝없이 더 떨어지고 있고 정부는 계속하여 밥쌀 수입 입찰공고를 내고 있습니다.

칠순 농민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은 동시에 ‘우리 민주주의의 죽음’입니다.

경찰이 물대포로 조준사격한 것이 명백한 ‘살인미수’였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습니다. 살수차에 장착한 CCTV 영상으로도, 그리고 최근 국회에서 열린 ‘백남기 청문회’에서도 분명히 거듭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317일 동안, 무고한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이 사건에 대하여 책임을 진 사람,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사법적인 처벌은커녕 사과 한마디, 심지어는 최소한의 유감 표명 한마디조차 없었습니다. 국정의 총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도, 직접적인 지휘 책임자인 강신명 경찰총장도 모두 입을 꾹 닫고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 명시된 것처럼 정말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라는 질문과 한탄, 분노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어제 저녁,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의 풍경은 두 눈으로 보고도 차마 믿기지 않을 만큼 참담했습니다. 고인을 추모하고 서로 위로해야 할 자리에, 그동안 야멸차게 모른 체만 했던 정부는 다시 경찰을 대거 투입했습니다. 병원을 둘러싸고 시민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도 모자라 병원 안 곳곳은 물론 장례식장 바로 앞에까지 난입하여 아수라장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정녕 민주주의 국가라는 2016년 대한민국의 모습입니까? 1970년대 긴급조치 군사독재 시절, 수시로 계엄령을 선포한 시대와 무엇이 다른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백남기 어르신의 오랜 동료들은 그를 ‘생명과 평화의 일꾼’이라 불렀습니다.

‘농업’과 ‘민주주의’가 처참하게 질식당하는 시대에는 ‘시민’도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칠순 농민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화성민주포럼 대표
화성희망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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