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2016 리우 올림픽’이 장장 17일간 대장정의 막을 내렸습니다. 206개국 1만 9백여 명의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자웅을 겨루는 무대인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소식은 바로 미국 대표팀 선수들의 ‘직업’과 관련한 기사였습니다.

펜싱 플뢰레 남자단체전 동메달리스트인 미국의 게릭 마인하트 선수는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애널리스트라고 합니다. 경영학 석사 학위(MBA)까지 갖고 있고 평소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훈련하고 출근하는데, 올림픽을 앞두고는 회사의 양해를 얻어 전화상담만으로 일을 하면서 준비했다고 합니다.

위 선수뿐 아니라 미국 대표팀 선수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합니다. 온라인 숍을 운영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포환던지기 선수, 초등학교 선생님인 사격 선수, 대학교 수학교수인 마라톤 선수, 부동산 중개인인 체조 선수도 있습니다.

미국 대표팀뿐만도 아니죠. 유도 여자 48kg급 결승에서 한국의 정보경 선수를 꺽고 금메달을 획득한 아르헨티나 파울라 파레토 선수는 의대를 졸업한 전문의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업은 멀리하고 운동에만 매진하면서 결국 ‘태릉선수촌’에 입성하면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가 곧 하나의 ‘직업’으로 인식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아주 많이 다르기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다시 일각에서는 ‘엘리트 체육이냐 생활 체육이냐’는 해묵은 논쟁이 재연되기도 합니다. 어렵고 골치 아픈 이야기들은 다 미뤄놓고서라도, 우리는 언제쯤 스포츠를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을까요?

얼마 전 기아자동차에 근무하는 동네 형님과 술을 한잔 하며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인데 축구를 무척 좋아하고, 또 잘한다고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 희망에는 또박또박 ‘축구선수’와 ‘컴퓨터 전문가’라고 적었던 녀석입니다. 그러나 최근 이 부자는 긴 논의 끝에 ‘축구선수’는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운동선수로 성공(?)하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별도의 코스와 조기유학을 거쳐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 뜨거운 날씨에도 공 하나 들고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는 녀석의 뒷모습에 마음이 짠합니다. 마음껏 즐기고 누려야 할 스포츠가, 대한민국에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포기’를 가르쳐주는 또 하나의 슬픈 도구가 되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우리 체육계와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소식도 있었지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어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잇따라 최정상급에 올랐던 역도의 김병찬 선수가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던 사건입니다. 1996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의 척수장애인이 되었고 2013년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지내던 중 식도암까지 걸려 외로운 투병 생활을 하던 김병찬 선수에게, 이른바 ‘금메달’은 거꾸로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도 받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일 뿐이었습니다. 금메달을 땄을 때만 쏟아졌던 반짝 관심과 환호, 그리고 그 이후 ‘사회적 타살’로까지 이어졌던 금메달리스트의 비극은 우리 사회 모두의 비극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따져보자면, 최저임금 6030원으로 주야 12시간 맞교대를 뺑뺑 돌아봐야 일가족의 생계도 꾸려나가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생활체육’이란 구호는 그저 그림 속의 떡,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이제 막 세상을 향해 나선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컴퓨터 전문가’와 ‘축구 선수’라는 두 개의 꿈 중에서 그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꾸는 것이 과연 ‘불온한 상상’일까요?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화성민주포럼 대표
화성희망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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