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평택항에서 하역하는 노동자 윤성관

▲ 노동자 윤성관. ⓒ뉴스Q 장명구 기자

“어떤 때는 30분만 일하고도 하루 일당을 받아요. 비가 오는 날이면 아예 일을 안 하고도 하루 일당을 챙길 수 있지요.”

‘지금 하시는 일의 좋은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돌아온 윤성관(49) 씨의 답이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하지만 이어 ‘그럼, 나쁜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금세 모골이 송연한 답이 돌아왔다.

50톤짜리 철제가 머리 위로 왔다갔다해 마냥 불안한 상태에서 노동을 해야 한단다. 한번은 그 철제가 떨어져 크게 불상사가 날 뻔도 했다. 그만큼 험한 일인 데다 일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더 많은 달도 있다고 했다. 오가는 동료들의 말도 자연스레 거칠 수밖에 없단다.

윤 씨는 왜 이런 일을 하게 됐을까? ‘속닥속닥 우물가 기자단’이 23일(토) 오후 평택시 서정동 해맑은어린이도서관에서 만나 그 사연을 들어봤다.

윤 씨의 일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쌍용자동차에 취직한 것이었다. 그는 15년 동안 쌍용자동차에서 성실히 근무했다. 지난 2009년 한국사회를 뒤흔든 쌍용자동차 해고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말이다.

쌍용차 해고사태는 2,646명이라는 대규모 해고에 맞서 노동조합 한상균 지부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지난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약 77일간 쌍용차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사건이다.

윤 씨도 노동조합과 함께 회사에 항의했다. 파업까지 해가며 회사에 남아있기를 바랐지만 결국 해고되고 말았다. 그는 바로 쌍용차 해고노동자였던 것이다.

윤 씨는 해고의 충격으로 한 2년 동안은 술로 살았다고 한다. 술에 의지해 삶을 버텨낸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가 버렸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을 차리고 일자리를 찾아나섰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근무 이력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회사의 부당한 해고에 맞서 ‘파업 투쟁’을 벌인 것이 그 무슨 불순분자처럼 곱지 않게 보는 세상이다.

평택의 그 어떤 회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았고, 결국 이력서가 굳이 필요 없는 직장을 구하다보니 평택항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것이다.

언제 또 다시 해고될까 할 말도 못하면서 일만 해야 하는 평택항, 편안한 근무환경에서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쌍용차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하기에 윤 씨는 정든 일터로 다시 돌아갈 날을, 쌍용차 복직에 대한 희망의 끈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복직을 원해요!” 마지막 그의 간절한 바람이다.

▲ 인터뷰를 마치고 ‘속닥속닥 우물가 기자단’과 함께. ⓒ뉴스Q 장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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