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배달부-인간의 정을 배달해주는 사람들

모두가 잠든 새벽 힘든 몸 일으켜 오토바이를 탄다.
무엇을 먹었는지도 모르게 점심을 먹고
여유 있게 차 한잔 할 시간도 없이 달리고 달려
우리이웃에게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을 전한다.
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성스러운 일꾼인가.

우리는 하루하루 힘겹고 지친 숨을 몰아쉬며 꿈과 현실을 오간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달음질친다. 그러나 삶은 늘 전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씩은 크게 상처를 입고 깨지며 넘어진다. 이럴 때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홀히 대해왔던 것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며, 너무 고독해 더 깊은 슬픔에 빠져버린다. 이제, 진정한 사랑을 품고 하나하나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 것 하나 고맙지 않고, 어느 것 하나 기쁨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뜨겁게 주고받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깊고 깊은 슬픔 속에서도 마음을 편히 쉴 곳이 있으리라.

▲ 편지를 배달하는 진기석 씨. ⓒ이동권

깊은 잠에 떨어졌다. 자리에 눕자마자 이렇게 쉽게 잠에 빠진 것은 오랜만이었다. 허리가 아파 뒤돌아 눕거나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덮기 위해 잠깐 잠에서 깼을 뿐, 사나운 지진에 유리창이 산산조각 부서진다 해도 밀물처럼 밀려드는 잠은 물리치지 못했으리라.

새벽녘에는 보리밭에서 흙을 돋우는 농부와 마을 어귀를 따라 길게 뻗은 수로가 나타나는 짤막한 꿈을 꾸기도 했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처럼 한꺼번에 빛이 쏟아지면서 나타나는 이미지였지만, 어찌나 또렷한지 생시 같았다. 하얗게 말라 몇 줄기 그대로 남아 있던 헛간 지붕 위의 민들레도 생생하다. 가뭄이었을까.

아침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골목길을 누비던 ‘우편배달부’를 쫓아다니다 벌어진 일이다. 꿈속에 나타난 장면은 바로 우편배달부가 내달리던 길이었다.

편지를 쓰는 마음

아직은 쌀쌀한 새벽. 기차역을 향해 걸었다. 하늘을 덮었던 구름이 걷히면서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올해는 유달리 꽃샘추위가 기승이다. 한 달 전에 잡아놓은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몸은 쉬 더워지지 않았다. 앙상했던 나뭇가지 끝에 자라나는 가냘픈 털을 보면서 봄이 왔음을 느낄 뿐이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막막하다. 내부의 무언가가 망가진 사람들처럼 차가운 기운이 가득하다.

딩동댕. 어디선지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울리다 만다. 문자메시지다.

소통의 방법이 원시적이었던 시절. 사람들은 편지와 함께 울고 웃었다. 핸드폰과 이메일이 주는 편리함이나 박진감은 없었지만, 그 시절의 편지는 소식을 전해주는 수단을 넘어 아픈 데를 어루만져 주던 할머니의 손길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애끓는 시상이 떠오르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날 때, 혹은 사회생활에 대한 갖가지 상념과 마주칠 때면 새하얀 노트에 뭔가를 써서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글솜씨가 없어 통속적이면 어떠한가. 모든 글은 제 나름대로 멋이 있고, 마음이 담겨 있으면 따스한 것을. 하지만 요즘 우체통에 가득 꽂힌 각종 요금 청구서들과 공과금 통지서들을 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빨라지고 차가워졌는지 실감할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잔인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순하게 살고 싶다. 이 책을 보고 있는 독자라면 이러한 ‘소망’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으리라. 바쁘고 냉소적인 세상이라지만, 마음의 경계까지 그을 수는 없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에 따뜻한 사랑을 이어주는 ‘우편배달부’를 만나러 간다.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결혼은 아무나 하나

아침 7시 30분. 외투 깃을 얌전하게 내린 집배원 진기석 씨가 우체국에 도착했다. 진 씨는 어젯밤에 분류해 놓은 일반우편물을 오토바이에 실었다. 그가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편물을 가득 실은 트럭이 도착하면 오전 9시까지 동료들과 함께 분류작업에 들어간다.

진기석 씨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건넬 만큼 상냥하고 친절했다. 집배원이라는 이미지가 풍기는 특유의 구수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쓸데없는 화제를 꺼내 상대방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는 선량함도 가졌다. 사소한 일에도 배려하는 것을 보면 상대방이 먼저 공손해질 정도다. 하지만 그는 아직 총각이다. 이유를 물으니 “하고는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웃어버린다.

집배원 중에는 노총각이 많다. 진 씨는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데 누가 좋아하겠느냐’면서 “평소 고생하는 면을 많이 봐서 그런지 딸을 주는 어르신들이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는 현대 사회의 병폐와 광증을 얘기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이 세상에는 모든 언행이 마음과 다르고,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없어 보인다. 과연 ‘사람’보다 ‘돈’이 우선일까. 진 씨는 “여자들은 친근감 있고 고맙게는 생각하는데, 고생스럽거나 위험한 얘기를 하면 고개만 끄덕일 뿐 더 이상 진전이 없다.”면서 “선을 봐도 일 얘기는 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 씨는 나에게도 결혼했느냐고 물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두서없는 자기 고백 시간이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요

아침 8시. 특수발착실의 풍경은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아니 매우 소란스러운 시장 같았다. 장작더미처럼 가득 쌓인 우편물을 집배원들은 잠시 여유 부릴 시간도 없이 재빠른 동작으로 분류했다. 떠들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면서 힘겨운 노동을 즐거움으로 변화시키면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들은 또 자신의 일이 끝나면, 서로 일을 도와가며 1시간 안에 작업을 끝냈다. 그래야만 하루 일과가 처지지 않고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 특수발착실은 소포와 등기, EMS 우편물을 취급하는 곳. 일반우편물을 분류하는 집배실은 따로 있다.

집배원들은 담당하는 구역마다 칸칸이 나뉜 책장에 우편물을 분류해 넣는다. 한편에서는 소포를 구분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우체국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이곳 평택우체국에는 60여 명의 집배원들이 움직인다. 국제우편물도 등기와 함께 바코드를 찍어 PDA 기계에 입력한다. 이 자료는 모두 중앙 컴퓨터에 저장되고 관리된다. 콜센터에서는 등기 정보를 열람해 언제, 어느 시간에 배달되는지 고객에게 알려준다. 평택 시내에 배달되는 택배우편물은 별도로 계약한 택배업체에서 배송한다. 집배원은 등기와 일반 우편물을 취급한다. 하지만 시골은 아직까지 모든 배달을 집배원이 맡는다.

진 씨는 시골 지역까지 돈다. 업무가 많아 택배 업무를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 씨는 “나이 든 집배원이 거의 없다.”면서 “아무래도 몸이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시스템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취미생활이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면서 ‘어느 정도 시간 여유가 있어야 학원에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요일에는 8시부터 30분 동안 아침조회가 있다. 이 시간에는 일주일 동안 있었던 행정실무가 전달되고 안전운행, CS(고객서비스), 불만 고객 대응 방법, 복장 등 여러 가지 교양 교육이 이뤄진다. 우체국도 자업자득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실적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별다르게 길지는 않다. 그 대신 상황판에 적어 놓는다. 그는 ‘일도 힘든데 실적 이야기를 하면 집배원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요일 오후에는 우편물을 접수받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월요일은 일이 적다. 그리고 토요일은 3교대로 돌아가면서 일한다.

▲ 편지를 배달하는 진기석 씨. ⓒ이동권
우체국의 얼굴, 집배원

우체국에는 ‘상시집배원’이 있다. ‘비정규직 집배원’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집배원이 되려면 상시집배원으로 시작하는 게 관행처럼 됐다. 그러나 상시집배원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이 정규직이다. 진기석 씨도 상시집배원으로 들어와서 1년 6개월 만에 정규직이 됐다. 그는 ‘나는 좀 빠른 케이스’라면서 “정규직 직원이 그만두거나 충원이 필요하면 주기적으로 정규직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늦어도 3~4년 정도 일하면 정규직이 된다.”면서 ‘점점 정규직을 늘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정규직이 된 뒤 가장 좋은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월급이 늘어난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처음 우체국에 들어올 때는 의욕에 불타 있었습니다. 사소한 고객 불만도 다 챙겼고, 번지수 없는 편지까지도 찾아가 전해주기도 했죠. 하지만 비에 젖고, 눈에 젖은 제 모습을 사람들이 처량하게 볼 때는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고마워하고 걱정해주는 것은 좋지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이 지긋한 경비 아저씨가 비를 맞고 있는 집배원을 보고 처량한 기분이 들었는지 만 원짜리를 손에 쥐여줬다는 이야기도 선배님한테 들었습니다. 집배원이라고 하면 월급도 적게 받으면서 고생한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동정을 베풀려는 것이 아닌 이상 ‘사람의 정’은 아름답다. 그리고 그것을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라고 말하지 않았던 집배원의 인품도 아름답다. 하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은 서로를 이해하면서 포옹하는 것. 괜한 연민이나 선민의식은 타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진 씨는 “상시집배원은 보통 150여 만 원을 받지만, 정규직이 되면 170~180만 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호봉이 오르는 것을 감안한다면 간극이 꽤 크다. 이유야 어찌됐든 우체국에서 ‘비정규직 집배원’을 채용한다는 말에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우체국이라는 존재감 때문이다. 우체국은 왠지 모르게 소박한 친구나 자혜로운 이웃 같다. 이러한 믿음을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집배원들. 세상이 삭막하게 변하고, 자본의 장막에 휩싸이더라도 우체국은 오늘날의 위상을 만들어준 이들의 은공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체·예비 인력이 없다

9시 30분. 바코드 입력까지 끝낸 진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우편물 배달을 시작한다. 그는 먼저 평택 도심의 담당구역을 오전 내내 순회한 뒤 추팔공단에 들러 10분 정도 점심식사를 하고 추가 우편물을 챙긴다. 배달 양이 많아 한 번에 싣고 다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 씨는 12시경에 공단 슈퍼에서 한 번, 오후 2시경에 팽성우체국에서 또 한 번 우편물을 받아 오토바이에 싣는다. 계속해서 그는 객사리 지역을 돌아 오후 3시경 평택미군기지 캠프험프리와 경계지역인 두정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4시 30분에서 5시경 대사리에 들어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우체국으로 되돌아간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갖가지 머리 아픈 일로 한층 더 예민해 있을 때, 혹은 배달 시간에 쫓겨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간혹 교통사고 같은 사고가 일어날 듯싶다.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까닭에 눈이나 비가 오면 더욱 위험할 것이다. 진 씨는 “작은 개가 짖으면서 쫓아오다가 오토바이 사이에 들어와 넘어진 적도 있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보니 차량 접촉 사고가 간혹 발생한다.”면서 “주위에도 교통사고 때문에 출근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 다칠지 몰라 위험하지만, 사고로 다치게 되면 동료들이 일을 나눠서 맡아야 하기 때문에 미안하다.”면서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집배원의 세계에서는 예비 인력이란 게 없다. 10명 중 1명이 빠지면 9명이 일을 분담해야 한다. 그렇다고 빈 공백이 단박에 모두 채워지지 않는다. 새로운 지역을 파악하고 숙지하는 일이 하루 이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임시직 형태로 충원하지 않는 한 빈 공백을 깔끔하게 메우기란 힘들다. 이런 이유로 우체국에서는 남의 구역을 배우는 시스템을 점차 도입하고 있다. 진 씨도 “이런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만 휴가도 내고, 월차도 낼 수 있다.”면서 “휴가, 월차가 있어도 미안해서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배달 업무 중에 다치면 치료비는 어떻게 처리할까. 진 씨는 “차를 긁거나 백미러 같은 데 손을 다치는 등 경미한 사고는 개인이 처리하지만, 큰 사고가 나면 우체국에서 보험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우편물 분류작업 중인 우편배달부. ⓒ이동권
우편번호를 꼭 써주세요

집배원들은 우체국의 살아 있는 영업사원이자 광고사원이다. 고객들이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우체국의 번성과 몰락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달 업무는 우체국의 고유한 직무이기에 세상이 두쪽이 나도 별일 없겠지만, 우체국에서 사활을 걸고 있는 택배나 금융 업무는 매우 다르다. 집배원들도 이러한 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다. 진기석 씨의 뒤죽박죽 일상을 들어보았다. 목 놓아 울고 싶었거나 진땀 흘렸던 기억을.

진 씨는 “택배 업무를 같이 하다 보니까, 평상시에는 친절하다가도 가끔 함부로 대하는 주민들이 있다.”면서 “제 시간에 배달된 택배에도 ‘왜 이 시간에 오느냐’, ‘굉장히 많이 기다렸다’고 큰소리를 친다.”고 말했다. 만날 보는 고객인데도 그렇다는 것.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좋은 우편물이 없어서’라고 말한다. 그는 ‘청구서나 세금고지서가 우편물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집배원이 반갑겠느냐’면서 “거리감이 생기게 된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진 씨는 ‘집배원들은 현장에서 수많은 민원인들과 부딪치기 때문에 이런 사항을 책으로 만들어 회람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성질 더러운 고객이 ‘야’라고 부르면 솔직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고객 중에는 항상 믿음을 갖고 웃으면서 받아주는 사람도 있다. 집배원들은 이런 고객을 만나면 힘이 난다.

“도심을 벗어나 시골에 들어가면 아직 정이 남아 있습니다. 도시와는 다르죠. 수확기가 되면 먹을거리를 챙겨주기도 합니다. 너무 바빠 안 들르고 싶어도 어르신이 손짓을 하면서 ‘사양하면 다음부터는 안 부른다’고 하니까 서운해 하실까 봐 들르게 되죠. 인사도 빼먹지 않습니다. 오래 가다 보니 신용이 쌓여 통장을 맡기는 분도 있고요. 배고프다고 말하면 라면도 끓여줍니다. 이럴 때 보람을 많이 느끼고 고맙습니다. 힘들어도 시골 지역을 돌아다니는 게 좋습니다.”

진 씨가 고객에게 바라는 점이 궁금하다.

그는 우선 ‘우편번호를 꼭 써 달라’고 부탁했다. 우편번호를 쓰지 않거나 규격봉투를 사용하지 않으면 모두 수작업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규격 외 봉투를 사용하면 요금도 더 비싸다고 일러준다. 그는 또 ‘집배원들 힘드니까 친절하게 대해 달라’면서 ‘빈말이라도 좋으니까 고생이 많다고 격려해 달라’고 말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저녁 6시. 정신없이 바쁜 하루가 지났다. 그렇다고 여기저기에 깔려 있던 긴장감이 사라지진 않는다. 다음 날 배달할 일반우편물을 정리하는 일이 남았다. 지금부터는 순로(배달 경로)를 잡고 ‘빨(묶음)’로 묶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을 저녁에 해두지 않으면 길이 엉키고, 왔다 갔다 하게 돼 하루 업무를 소화할 수 없다. 그러나 순로 작업은 노하우가 필요하다. 배달 구역을 통째로 머릿속에 넣어두어야 한다. 진 씨도 “처음 우체국에서 일할 때 순로를 잘 몰라 새벽까지 일했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 한 달의 절반은 7시에서 8시 사이에 퇴근하고, 절반은 10시경에 퇴근한다. 자신을 돌보는 것은 고사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힘들만하다.

세월이 흘러가는 것마저 잊어버리고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좀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 부분에서 그가 왜 이 수고를 마다 않고 집배원이 됐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진 씨는 ‘사람 만나는 게 좋아서’라고 말했다. 사람 만나면서 안 좋은 일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좋은 일이 많았다는 것. 그는 ‘사회가 어지럽고 혼란해도 80%는 좋은 사람들’이라면서 “서로 기쁨도 주고, 정을 나누면서 5%를 더 당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력 있는 목소리로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성실하고 신뢰와 정이 오가는 집배원이 되고 싶습니다. 또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토의하고 얘기하면서 해결해보고 싶고요. 나이가 들면 집배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도 일하고 싶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그의 천직은 집배원이다.

도둑 부르는 우편물

우편물이 정상적으로 배달되어도 15~30일 정도 우편물이 계속 문 앞에 쌓이면 반송 처리를 해요. 외부인이 침입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외국 우편도 2박 3일

요즘에는 알래스카에서 보낸 편지도 2~3일이면 안방에서 받아볼 수 있어요. 직항 국제항공을 타고 곧바로 한국으로 들어오거든요.

미운 고객 1

우편물 수령 시간을 알려드렸는데도, 저녁에 와서 다짜고짜 달라고 요구하는 고객들이 있어요. 등기실 문이 잠겨 있어 줄 수 없다고 말하면 너무나도 쉽게 집 앞 슈퍼에다 갖다 달라고 하고요. 고객한테는 별 볼일 없는 우편물일지 모르지만, 집배원에게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미운 고객 2

집배원에게 욕하는 고객들이 있어요. 집배원은 ‘어’라고 얘기했는데, 고객이 ‘아’라고 들어서 발생하는 경우죠. 집배원들은 내용이 잘못 전달됐다면 먼저 사과를 하지만 그래도 엄한 고집을 부리는 고객에게는 직접 찾아가서 얘기해요. 어떻게든 풀어야 하거든요.

미운 고객 3

바쁜데 전화기를 붙잡고 시간을 끌면서 고문하는 고객은 정말 난감해요. 배달 가야 하거든요.

미운 고객 4

법원 등기나 내용증명은 본인한테 전달하는 게 원칙이에요. 근데 경비실에 맡겨 달라고 부탁하는 고객들이 있어요. 집배원들이 안 된다고 하면 “높은 사람 바꿔.”라면서 화를 내요. 결국 국장한테까지 전화가 올라가게 되죠.

미운 고객 5

시골에는 10가구 정도가 같은 번지수를 씁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다른 집 편지가 오면 ‘왜 다른 집 편지가 우리 집으로 왔느냐’고 말하는 고객들이 있는데, 번지수가 같아서 그런 거예요. 아니면 주소지만 옮겨놓고 살지 않는 고객들도 있고요. 집세도 안 내고 도망가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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