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길수 6.15경기본부 홍보위원.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부터 당신 임기에 걸쳐 진행한 개혁 정책 가운데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많다고 호언장담했다. ‘대못’이라고 표현한 그 정책들은 그러나 ‘상상 그 이상’의 후임 정권 담당자들 손에 여지없이 찢겨지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2016년 2월 11일 내려진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는 그 화룡점정(?)이었다. 더욱이 그것은 북한의 핵실험을 제재한다는 실제 이유보다도 국내정치 상황을 위해 남북 대치 정국을 악화시킨다는 의심마저 불러일으킨, 순수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자해’라는 평가도 있고 보면, 현재 우리나라 상황은 상식 차원의 진단을 불허하는 수준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봄, 우리는 다시 남북 사이에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시절, 춘래불사춘의 시대,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임을 선언했음에도 산과 들마다 ‘봄꽃관광객’이 넘쳐나는 ‘비상(非常)’한 세월을 살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대통령 집권기를 지나며 우리나라 정치경제와 사회문화, 외교안보 등의 퇴행은 그야말로 무차별로 자행되었다.

최근의 사례만 보아도 역사, 독도 등과 관련해 ‘적국’이나 다름없는 일본과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이 초읽기에 들어갔고,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작업은 밀실에서 ‘문제없이’ 진행 중이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과는 터무니없는 협상을 타결(?)하였고, 국가부채와 가계부채의 증가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테러방지법 제정 이후의 물불 가리지 않는 통신자료 조회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메르스와 세월호 사태에서 보여준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의 붕괴, 세계 최고의 자살률,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청년 실업률의 증가와 ‘N포 세대’의 등장, ‘흙수저론’으로 대별되는 계층(계급) 구조의 고착화 현상 등등, 퇴행의 정황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하다.

이러한 체감적인 문제들은 구체적인 통계로 충실히(?) 뒷받침된다. 노인빈곤율(49.3%), 노인자살률(80.3명/10만명), 남녀임금격차(62.5%/남자100), 출산율(1.23명), 어린이·청소년행복지수(72.54점/23개국 중 23위), 산재사망률(20.99명/21개국 중 1위), 연간 노동시간(2,090시간/OECD 평균 1,776시간), 실질은퇴연령(남-71.1세, 여-69.8세 /OECD 평균 남 64.3세, 여 63.2세), 성인남녀 행복지수(59점, 143개국 중 118위)... (김종걸, ‘낮은 곳으로부터의 혁신’,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인터넷사이트).

한마디로 지금 우리 사회는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갈수록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구조가 나날이 고착화되고 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우리 사회의 최상층 내지 기득권층에 진입한 사람(기업)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공동체(국가, 사회)’의 공동 발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재투자하거나 분배하기보다는 기존의 틀(국가, 한민족공동체)을 벗어나서 글로벌한 차원에서의 생존을 위해, 독점을 심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기로 방향을 잡았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다른 말로 ‘사다리 걷어차기’가 성공적으로 완성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서민’ 내지 ‘하위계층’의 사람들이 계층이나 부의 상승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속가능한 발전의 도상에서 인생의 결국의 목적인 행복을 나름대로 함께, 오래도록 누릴 수 있느냐, 적어도 그런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느냐, 다시 결론적으로,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최후의 물음과 관련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안심스러운’ 것은 대통령조차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핵정상회의 참석차 워싱턴을 방문한 길에 미국 블룸버그 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최우선 목표이며, 통일이 새로운 도약의 디딤돌이라는 신념에 전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중앙일보 4월 1일자 보도 인용) ‘평화통일’이라는 것과 ‘도약의 디딤돌’이라는 말은 많은 상상을 자아낸다.

위에서 열거한 우리 사회의 문제, 무엇보다 7포(연애·결혼·출산+취업·주택+인간관계·희망의 포기)를 넘어 ‘N포’에 이른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희망찬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방법이 그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말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반대 방향의 흐름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관건은 어떻게 대통령의 말이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하느냐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바로 투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복종하는 단 하나의 지시봉은 ‘투표용지’가 가리키는 방향이다. 투표야말로 우리가 평화로운 상생과 ‘남북 모두 행복한 통일대박’의 길로 가는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이다.

공천 후유증 문제, 후보자의 자질 문제,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의 무능과 기득권화 등등 투표장에 가지 않을 이유는 너무도 많다. 그러나 그 어떤 유혹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투표장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이 ‘신(新)자본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세상에서 우리의 인권과 행복을 지키고 회복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봄이 겨우 보일락 말락하는 새싹으로부터 시작되듯이, 통일은, 그리고 우리 살 만한 세상은, 거창한 구호나 정책보다 한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투표하라! 투표하라! 투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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