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기석 6.15경기본부 상임대표. ⓒ장명구 기자

혹시 파락호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파락호는 재산이나 권력이 있는 양반집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파락호 행세를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일제 강점기 때 만주 독립군의 독립운동 자금을 댄 김용환 선생의 파락호 행세는 눈물겹도록 감동적입니다.

선생은 1887년 안동에서 의성 김씨 학봉파의 후손으로서,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유녀시절 항일의 뜻을 품게 되었고, 장성해서는 의병활동을 하면서 거액의 군자금을 제공하다가 3번이나 일경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노름판을 다 돌아다니면서 재산을 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름판이라는 노름판은 다 돌아다니면서 재산을 몽땅 탕진했습니다.

종갓집 논과 밭 18만평(현재 시가 200억원)을 다 팔아먹었습니다. “집안 망해 먹을 종손이 나왔다”고 온 문중이 말렸으나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문중 체면을 위해 문중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하여 사준 전답까지 다 팔아먹었습니다. 심지어 무남독녀 신행 때 친정집에 가서 농을 사오라고 사돈집에서 몰래 보낸 돈마저 가로채 노름으로 탕진했습니다.

특히 그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노름을 하다가 새벽에는 판돈을 다 걸고 돈을 따면 그대로 가져오고, 잃으면 “새벽 몽둥이야”라는 신호에 따라 주변에 숨어있던 하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와 판돈을 다 빼앗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그는 문중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갖은 모욕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 모든 돈을 독립군 활동 자금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온갖 불명예를 감수하며 철저히 파락호 행세를 했던 것입니다.

해방 후에 그 사실을 잘 아는 친구가 사실대로 알리자고 했으나, 그는 선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는 1946년에 세상을 떠났고, 뒤에 그의 행적이 밝혀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보수 기득권 핵심세력은 친일과 독재정권에 연관된 자들이나 그들의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정치 경제 언론 등 우리 사회의 주요영역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국정을 농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각계각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일제의 탄압에 맞서 오직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안일과 재산과 명예를 초개와 같이 버린 참 애국자 김용환 선생이 너무도 존경스럽고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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