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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은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에요무당-길흉을 점치고 굿하는 사람들
이동권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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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13  13: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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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해버리는 세상. 
이렇게도 억울하고 서글픈 누명을 쓰고
사는 사람들이 어디에 또 있을까.

말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똑같은 말이라고 해도 어느 누구에게는 듣기 좋을 수도 있고, 어느 누구에게는 익숙하지 않거나 싫을 수 있다. 그러한 말 중에서 우리가 신중하고 소중하게 입에 올려야 할 말이 있다. 바로 평가다. 그 의미는 얼마든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해 놀랄 만큼 무겁게 써야 할 것이다.

   
▲ 굿을 벌이고 있는 무당들. 요즘은 무속을 종교로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동권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대나무, 그 끝에 매달린 하얀 천이 연방 바람에 휘날렸다. 그 밑으로는 어린아이가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엉덩이를 드러낸 채 뛰놀았고, 하얀 털이 곱상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휘저으며 그 아이를 뒤따랐다. 조금 큰 아이들은 긴 소매를 팔락거리며 잔심부름에 여념이 없고, 따사로운 햇볕이 내려앉은 평상에는 노인들이 둘러앉아 특별한 소식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뭔가를 주시했다. 겉으로만 보면 분명 잔칫집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신중하고 무거워 웃을 때도 입을 가려야 할 정도였다.

북적북적한 마당을 지나 태평소 가락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단아한 한복을 입은 무녀 대여섯 명이 중앙에 서 있는 큰무당을 향해 양손을 쉴 새 없이 비볐다. 옆에는 삶지 않은 소머리와 돼지머리가 하늘을 향해 놓였고, 몸통은 큼지막하게 잘린 채 그대로 포개져 있었다. 상에는 각종 과일과 떡, 어물과 전 등이 보기 좋게 놓였고, 촛농이 제 몸을 뒤덮은 커다란 초 두 개가 신묘한 빛을 내며 타올랐다. 그 뒤에는 옥황천존을 비롯해 칠성할아버지, 산왕대신, 백마장군, 불사대신, 선녀대신, 글문대감, 천문대감 등이 그려진 탱화가 영검한 기운을 쏟아내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큰무당이 갑자기 커다란 칼을 들고 나와 이리저리 휘두르며 춤을 추었다. 칼로 팔을 긋기도 하고 배를 찌르기도 하면서 사람들에게 신력을 보여줬다. 또 두 개의 칼을 V자로 포갠 뒤 그것을 물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아찔했다.

며칠 전에는 무당이 커다란 삼지창, 사지창을 들고 소·돼지의 생고기를 찌르다 갑자기 “목이 뚫렸어.”라고 외치면서 팔을 벌리고 도는 광경을 목격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도록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정말 무당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무당은 다시 부정을 물리치는 의식처럼 축원을 한 뒤 한복으로 갈아입고 신령님께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원통한 게 뭐가 그리도 많은지 서럽게 울며 해원하다 사람들을 향해 쌀을 뿌렸고, 분홍색과 하얀색으로 물들인 꽃을 들고 사람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사람들은 무당에게 화답하듯 “도와주세요.”, “복을 주세요.”라고 빌며 머리를 조아렸다.

잠시 후 무당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기도를 올리고, 계속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이 자신의 몸에 들어온 것처럼 묻지도 않은 것을 고백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향해 눈을 흘겼고,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횡설수설하면서 과격해졌다가 순한 어린 아이가 됐다가 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무당이 큰소리로 “귀신을 잘 위해라.”, “조심해라, 동지섣달까지.”, “돈이 들어오나 몸이 좋지 않다. 술을 멀리해라.” 등의 말을 건네면 모두 신통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면서 만복을 가져다 달라고 기원했다. 굿이 끝나자 사람들은 흐뭇한 표정이 됐다. 여느 정원의 꽃보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세상사를 또 한 고개 넘겼다는 안도감이었다. 흡사 미사, 예배, 법회가 끝난 뒤의 모습과 비슷했다.

   
▲ 울산에 신당을 모신 박수무당 태무천. ⓒ이동권
무당은 사제다

우리 동네 골목에는 무당이 산다. 이 집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쑥 향이 물씬 풍겼고, 집 안에는 제의적인 도구들이 가득했다. 문 앞에는 이 집에 무당이 산다고 알려주는 청사등롱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항상 뭔가에 떠밀려 들어가고 싶은 호기심을 느꼈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모양이 다들 비슷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번번이 아쉬움을 달래며 마음을 접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무당도 한 명의 사제인 까닭이다.

기실 무당들은 성직자와 다르다는 편견, 혹은 사람들의 과도한 호기심 때문에 삶이 괴롭기만 하다. 예전에 한 방송국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짜 무당을 찾아라’라는 코너가 방송된 적이 있었다. 진짜 무당이라고 주장하는 가짜들이 나와 자신이 진짜라고 속이는 프로였다.

인천에서 신당을 모시고 있는 군인박수 이석우 씨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기가 찼던 모양이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무당은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면서 ‘미디어가 무당을 그런 식으로 몰고 가는 게 있다’고 성토했다. 왜 목사나 중은 가짜를 찾지 않느냐는 이유 있는 항변이다. 그는 또 “무당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대상이어서 그런 것 같다.”면서 “너무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무신론자다.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요술이나 신력,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적인 현상이나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일에 대해서도 ‘그러려니’하고 만다. 또 여느 종교와 마찬가지로 무(巫)교 또한 하나의 종교이며 가장 오래된 우리 민족의 신앙으로 생각한다. 인디언이 그들의 초자연적 힘의 요체인 ‘매니토’를 섬기는 것과 동등하게 여긴다. 그러니 이 글에 대해서 종교적인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몇몇 무당을 만났다. 굿하는 곳에도 직접 가보았다. 무당은 ‘귀신에 홀려 있거나 혹은 해괴망측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울산에 신당을 모신 박수무당 태무천 씨는 ‘무당은 신명을 모시는 사제’라며 “스님이 부처님을 모시고 목사님이 하나님을 모시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형식과 방식이 다르지 목적은 똑같다는 것. 그는 ‘비교해보면 우리가 모시는 옥황천존이 그들의 하나님과 같을 것’이라며 “자신이 믿지 않는 종교가 나쁘다거나 사이비라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군인박수 이석우 씨도 ‘신은 하나’라면서 “팔이 부러지면 내과에 가듯이 자신에게 필요한 종교를 찾아가는 것이 옳지 무당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거부할 수 없는 신내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남몰래’라도 얘기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무너져가는 초가삼간이라도 울창한 넝쿨이 우거져 남달라 보이면 자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무당에게는 예외다. 보리수 향기처럼 영검한 신력을 선사받았더라도 좀처럼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이 무당을 이상한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누구 집 아들딸이 미쳤다’고 웅성댈 뿐이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금방 퍼져나가기 일쑤다. 그럼에도 무당들은 신내림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신을 받지 않으면 인다리가 놓여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고 했다. 도대체 멀쩡했던 사람들에게 어떤 징후가 나타났기에 무당의 길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일까.

대부분은 아프거나, 누가 죽거나, 괴롭거나, 하는 일이 되지 않아서 무당이 됐다. 하지만 태무천 씨는 조금 다르다.

“제 의지와 상관없는 행동을 하게 됐습니다. 일하다, 공부하다 저도 모르게 한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몸이 빙빙 돌았지요. 막아보려고 해도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림굿을 받았습니다.”

이석우 씨는 다른 무당들과 유사하다. 그는 직업군인으로 일하다 밤마다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피곤에 지쳐 잠을 청하는 날에도 백색으로 휘감은 정체 모를 물체에 이끌려 비몽사몽 중에 이산 저산으로 끌려 다녔다. 또 그 물체에 이끌려 고서로 보이는 책을 강제로 읽기도 했고, 반항하면 목이 졸리는 경험도 했다. 그는 이후에도 번번이 나타나는 그 물체 때문에 소위 말하는 유체 이탈을 경험해야 했다.

“군에서 뜻하지 않은 일로 군복을 벗고 난 뒤 참담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지만 가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죠. 취직을 하면 얼마 되지 않아 회사가 어려워져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면 다시 회사가 좋아지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더욱 힘든 것은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사회에서 보잘것없고 초라해지는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너무도 괴로웠고, 가족들까지도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겉모습만 멀쩡했지 속이 곪기 시작했죠. 그러다 용하다는 점집을 순례하기 시작했는데, 신을 모셔야 산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왜 내가 박수무당이 돼야 할까 고민하면서 조상굿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제 신어머니인 황해도만신 이해경 선생을 만나 내림굿을 받게 됐습니다.”

   
▲ 8살 때 내림굿을 받고 30년 넘게 무당으로 살아가고 있는 만신 정순덕의 타살굿. ⓒ이동권
사이비 때문에 피해 보는 진짜 무당

무당들은 특별한 체험을 통해 내림굿을 하고 신을 맞이한다. 하지만 모두 내림굿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무교에는 강신무와 세습무가 있는데 세습무는 학습을 통해 굿을 배워 무교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로 동해안 별신굿, 진도 씻김굿 등이 있다. 이들은 가무가 뛰어나 문화재로서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강신무는 갑자기 신이 내려 무당이 되는 경우이다.

이들은 내림굿을 받으면 무당이 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는 논란거리가 발생한다. 무당이 되기 위해 거액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신제자로 선택받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내림굿을 한 뒤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오는 경우다. 특히 사이비 무당들이 돈을 벌기 위해 행하는 엉터리 굿이 많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태무천 씨의 아내는 “사이비 무당 때문에 진짜 무당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분당에 살고 있는 한 여자의 사연을 들려주겠다.”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녀도 ‘자운신녀’라고 불리는 무당이며, 태무천 좌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35세 가량의 한 미혼 여성이 자운신녀를 찾아왔다. 직업은 골프 경기보조원 겸 코치. 그녀는 골프 학원을 차리기 위해 10여 년 동안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았다. 하루는 언제 사업을 시작하는 게 좋을지 알아보기 위해 무당을 찾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80만 원대 치성을 드리지 않으면 죽는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신을 모시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에 겁이 난 그녀는 치성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약과에 불과했다. 무당은 그녀에게 ‘신기’가 있다며 내림굿을 받지 않으면 패가망신하고 자살하게 된다고 겁을 줬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사업할 돈을 들여 신굿을 하게 됐다. 또 무당은 그녀에게 무당을 처음 시작할 때 가진 게 있어서는 안 된다며 집도 얻어 줄 테니 수중에 있는 모든 재산을 넘기라고 했고, 다음 날 무당의 남동생이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와 그녀의 세간까지 모두 가져가버렸다. 3000만 원가량 되는 물품이었다. 전세금 5000만 원도 가져갔다. 그러나 무당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짜리 오피스텔에 신당을 차려주는 데 그쳤고, 월세도 내주지 않았다. 일곱 달이 지나도 똑같았다. 굿에 대한 지식도 매우 상식적인 수준의 역학만을 가르쳐주었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정보였다. 그녀는 속았다 싶어 무당 남동생을 찾아가 살림살이를 되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심한 욕설과 함께 두들겨 맞고 쫓겨났으며, 고소도 해봤지만 종교행위여서 소용이 없었다.

“신내림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사기를 친 거예요. 사람들은 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비되는 게 있거든요. 그녀도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데 신법이 국법보다 엄중하고 죽지 않으려면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고 하니 얼어버린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제가 신당 치우는 것을 도와줬어요.”

결코 가볍지 않은 일상

지난 일주일 동안 무당을 쫓아다니면서, 정말 힘든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무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한 자리에 길게 몸을 펴기만 하면 이내 잠이 들 것만 같은데 돌멩이가 등에 배기고 축축한 습기가 올라와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이는 것과 비슷한, 그런 느낌이었다.

소용돌이치는 갖가지 상념에 취해 일상을 보내다 신의 의지로 내림굿을 받고, 반으로 잘린 무처럼 뚜렷하게 갈라지는 정반대의 삶을 걷게 되는 무당의 길.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역시 이들의 삶은 힘들었다.

태무천 씨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밝히면 분위기가 냉각되고 대화의 흐름이 뚝 끊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무당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있는 데다 사람들이 자기와는 다른 부류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운신녀가 아이를 낳은 사연도 힘겹다. 그녀는 아이를 가졌을 때 신령님을 모시는 일로 병원에 가지 못했다. 진통이 3분마다 한 번씩 일어날 때에야 비로소 앰뷸런스를 불러 병원에 갔고, 그는 임신한 아내를 한 번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천하의 몹쓸 남편이 돼야 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한 번도 진료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제 몸 상태가 어떤지 몰랐습니다. 병원 의사들이 무식하게 보더라고요. 그래서 하는 일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무당이어서 그렇다고요. 그랬더니 ‘그럴만하네요.’라면서 나이 많은 의사 선생님을 소개시켜 줬습니다. 의사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어이구, 살다 보니까 신제자 아기도 받아보네.’라며 웃으시더라고요.(웃음) 치성을 드릴 때는 병원에 가지 않아요. 수술하고 피고름을 빼는 병원에 얼마나 나쁜 기운들이 많겠어요. 그게 몸에 들어오면 안 되잖아요. 굿할 때는 부부간의 잠자리도 금하고 먹는 것도 조심합니다. 꽃집에 가면 꽃향기가 배고 생선 집에 가면 비린내가 배는 법이거든요. 아이 낳고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방금 아기 낳은 사람한테 수간호사가 와서 ‘내가 언제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고 귀찮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 죽겠으니까 나 좀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이석우 씨는 ‘자신은 복이 많은 무당’이라고 말했다. 무당이 된 사람들은 거의 다 이혼하고, 신이 오기 시작하면 금전, 인간관계에 풍파가 생겨 혈연단신이 많다는 것. 그도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했고,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서 몰래 신당을 차려야 했다.

“애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빠를 싫어했습니다. 신당이 차려 있으니까 집에 친구조차 데리고 오지 않았죠. 고등학교 2학년 즈음이 되니까 이해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둘째 딸의 남자친구 아버지가 변호사였는데, 딸이 그 집에 놀러가서 아빠가 무당이라고 말하자 다음 날 이별통보를 했다고 합니다. 참, 유명해지면 힘들어지고 떳떳하게 말을 못하게 되니까 거꾸로 소박해지는 것 같네요.”

   
▲ 일광암 군인박수 이석우. ⓒ이동권
무당은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사람

무당들은 점 보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기도 하다. 터무니없는 것을 물어오거나 시험하려 드는 사람들 때문이다.

“한 할머니가 남동생 사주라며 들고 왔는데 머릿속에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더라고요. 알고 보니 죽은 사람의 사주였죠. 화가 나더라고요. 저를 시험하려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잃어버린 물건은 누가 가져갔느냐, 주식은 언제 빼야 하느냐, 로또 번호를 알려달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요행을 바라면 안 되는데요. 또 땅은 어디에 사야 되느냐, 두 남자 중에 누구를 선택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너무도 이기적이고 유치합니다. 신당에서 담배 피우는 분도 싫고, 오자마자 반말하는 것도 모자라 상점에 물건을 사러 온 것처럼 대하는 사람도 밉상입니다. 한번은 권력기관에 있다 퇴직한 분이 술을 먹고 왔습니다. 술을 드셨기 때문에 거실에서 상담은 되지만 신당에는 모실 수 없다고 말하자 이까짓 거 전화 한 통화면 없어진다며 호통을 치더라고요.”

옛날에는 무당이 존귀한 단어였다. ‘신사임당’, ‘임헌당’처럼 우러러보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당’자를 붙였다. 하지만 무당은 일제 강점기부터 비하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무서웠던 일제가 무당을 ‘무속인’으로 비하하고 굿을 못 하게 했다. 또 이승만 정권부터 기독교가 민족 신앙을 대체하면서 더욱 천대를 받았다. 이승만은 미국 유학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기독교를 이용했다. 불교가 융성한 시절이었지만 이승만 정권의 지지로 기독교는 급속도로 이 사회에 파고들었다. 그래서 자유당 시절에 무당은 ‘마귀의 자식’으로 불렸고 현재에도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무당은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사람입니다. 말 한마디라도 책임 있게 하고 반감을 가질만한 얘기는 가슴에 묻습니다. 다른 사람의 힘겨움을 덜어줘야 하고, 상대의 마음을 잘 이해해야 진정한 무당입니다. 이러한 소명의식이 없으면 무당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점바치(점쟁이)’로 끝납니다.”

우리 사회는 왜 무당에게 마음을 닫는 것일까. 서로 얽혔다가 풀어지곤 하는 실몽당이처럼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면 더 이상 어이없는 이유로 무당을 손가락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무당들이 쏟아내는 삶의 열정을 담담하게 인정할 용기가 필요하다.

천신굿과 오구굿

굿에서 제일 대표적인 것이 천신굿과 오구굿이에요. 천신굿은 신령을 모시면서 인간의 화복을 기원하는 굿이며, 오구굿은 죽은 영혼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굿입니다.

무당은 모두 작두를 타나요?

작두는 작두신령이나 장군을 상징하는 무구예요. 따라서 이들을 모시는 무당들은 모두 작두를 소유하고 있으며, 굿을 할 때 꼭 작두를 타지요.

무당이 작두를 타는 이유

무당이 작두를 타는 이유는 자신이 모시는 신령의 영험함을 증명하기 위해서예요. 영적인 힘이 무당에게 내려야만 맨발로 작두를 타도 베이지 않는다고 하거든요. 또 날카로운 작두를 맨발로 누르는 행위가 부정하고 해로운 기운을 억제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무당, 김금화

김금화(79) 선생은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나리굿’으로 유명한 만신(여자 무당을 존대해 쓰는 말)이자 외할머니인 김천일로부터 내림굿을 받았다. 비단꽃이라는 뜻의 ‘금화’는 13살 때 얻은 이름. 그 전까지의 이름은 ‘넘세’였다. 넘세는 남동생이 어깨 너머로 넘어보고 있다는 뜻으로,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딸(금화)을 낳고 실망한 부모님이 부른 이름이다.

김 선생은 다른 무당들처럼 내림굿을 받기 전 잔병치레가 잦았고, 14살 때는 정신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시집을 갔다. 하지만 시집살이가 녹록지 않았던 그는 2년 만에 시집에서 도망쳐 나와 17살 때 내림굿을 받았다.

그는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나호 배연신굿 및 대동굿 예능보유자로 지정돼 서해안 풍어제의 맥을 잇고 있으며, 로마대학에서 교황의 진혼굿, 백두산 천지에서 대동굿, 베를린에서 윤이상을 위한 진혼굿 등 굵직굵직한 굿을 펼쳤다.

연예인들은 무당 기질이 있다?

예기가 넘치는 연예인들은 무당과 비유되곤 한다. 주체할 수 없는 끼가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봐도 비슷한데, 무당이나 연예인이나 모두 춤과 노래를 잘하고, 연기력이 뛰어나며, 화려한 외모로 좌중을 압도한다.

내가 만난 무당들도 연예인들 중에는 내림굿을 받은 사람도 많고, 그런 기질이 보이는 이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언론에서 거론된 연예인으로는 1980년대 하이틴 스타 박미령, 한국의 리즈 테일러 김지미 등.

특히 김지미는 만신 김금화 선생으로부터 내림굿을 받고 신당을 모셨다. 김 씨는 1985년 영화 ‘비구니’ 촬영이 불교계의 반발로 중단되면서 5년 동안 두통에 시달리다 김 선생을 만나 씻은 듯이 치유됐다고 한다.

이유 없이 무병을 앓거나 빙의에 시달렸던 연예인들도 있다. 탤런트 안병경, 김수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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