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으로 시인의 시풍 변화를 들여다볼 기회

조석구 시인이 평생 동안 발표한 시를 모으고 정리해서 『조석구시전집』을 만들었다. 50여 년간 시를 써온 80대 원로시인의 문학적 성취와 인생살이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문학은 시대의 반영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50년이면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해 버렸다. 『조석구시전집』에는 세월의 변화만큼 다양한 시들이 함께 공존한다.

80년대 발표한 <객토>, <다시 사월에>, <허리부러진 흙의 이야기>, <평택역에서> 등의 작품에는 산업화로 해체되는 농촌과 가난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농민들의 피눈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1984년 발표한 시집 『허리부러진 흙의 이야기』는 시인의 말에 따르면 그해 나온 시집 중에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판매실적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80년대의 엄혹한 시대 상황과 맞물려 참여시의 득세가 큰 흐림이었는데, 제목에서부터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힘든 농촌현실을 이야기한 시인의 시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90년대 들어서 시풍이 조금씩 변하는데 이는 시인의 시에 대한 관점이 더욱 확실해져서인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숙명적인 고독과 허무 속에서 살아간다. 시를 쓰는 것은 영혼의 고향을 찾아가 등불을 밝히는 일이며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시는 꿈이며 이상이며 길이며 철학이며 절망이며 구원이다.

책머리에서 시인은 자신이 쓰고 싶은 시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때문에 이후의 시는 현실참여적인 초기 시와 다르게 개인의 내면과 인생에 대한 탐구로 변모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울한 상징>, <가을여자>, <사르트르에게>, <시간의 그물> 등이 있다. 그리고 80년대 작품이지만 <바람부는 날>에는 시인의 고독과 허무 그리고 나약한 인간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잘 나타나 있다.

이후의 시들은 길이가 짧아지며, 인생을 관조하고 달관하는 내용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구름솟대>, <폐사지 안부>, <여백>, <첫눈 오는 밤>, <불꽃놀이>, <당나귀> 등이 있다.

첫눈 오는 밤

첫눈 오는 밤엔

왠지 네가 올 거 같아

그냥 너를 기다린다

인생살이 넘어야 할 산이 있고

건너야 할 강이 있는데

무사히 잘도 넘긴 네가 대견스럽다

이렇게 눈이 푹푹 쌓이는 밤

너와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고

네가 좋아하는 노가리를 씹으며

밤새워 옛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싶다

이 허망한 세월 앞에

마냥 기다리는 내 마음에

밤새워 눈은 쌓이고 쌓이는데

-<첫눈 오는 밤> 전문

첫눈이 오면 첫사랑을 만날 것 같은 설렘으로 마음이 가득한데, 인생의 산 넘고 강 건너온 그대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인데도 오지를 않는다. 밤새워 맥주잔을 기울이고 노가리를 씹으며 이야기 하고 싶은데... 인생은 세월 앞에 아련한 그리움만 남긴다고 노래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시인의 삶과 사랑이 담긴 작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5권의 시집을 한권으로 엮어 전집을 내는 작업은 지난하고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단 한 권으로 시인의 일생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시인이 열정과 뜨거움으로 꽉 찼을 푸르른 청춘 때부터 인생을 뒤돌아보는 달관의 시까지 컬러풀하고 스팩타클한 작품을 감상해 보자.

2022년 7월 우리동네사람들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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