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산스님 6.15경기본부 홍보위원.

기원전 2세기 후반 서북 인도를 지배했던 메난드로스 1세와 당시 인도의 뛰어난 스님이었던 나가세나 존자와의 대화를 서술한 『밀린다팡하』를 한역하여 『밀린다왕문경』 혹은 『나선비구경』이라고도 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왕이 말했다. “나가세나 존자여, 나와 함께 다시 대론합시다.” “대왕이시어, 만일 당신이 현자로서 대론하시는 것이라면 당신과 대론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왕자로서 대론을 원한다면 나는 당신과 대론하지 않겠습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현자로서 대론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대왕이시어, 현자의 대론에 있어서는 문제가 해명되고 해설되며 비판되고 수정되며 반박을 받지만 그런 일로 노여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어, 현자는 이와 같이 대론합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그렇다면 왕자로서 대론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대왕이시어, 왕자들은 대체로 대론에 있어서 한 가지 일을 주장하고 한 가지 점을 밀고 나가며 그 일과 그 점에 따르지 않는다면 ‘이 사람에게 이러한 벌을 주어라’ 라고 명령합니다. 대왕이시어, 실로 모든 왕자는 이와 같이 대론합니다.” “좋습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나는 왕자로서가 아닌 현자로서 대론하겠습니다. 존자는 마치 비구나 사미나 혹은 재가신자와 대론하는 것처럼 마음 놓고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대론해 주십시오.”

지금으로부터 약 2천여년 전의 경전에서 우리는 정직한 대화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선지식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대화란 정직하고 솔직한 자세와 인정하고 이해하는 자세로 임해야 하며 또한 항상 진지하게 수용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대화에 있어서는 항상 총체적인 안목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임해야 한다. 일부분의 특성을 전체적으로 적용시키고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적용시키는 궤변은 피해야 한다. 이것은 특히나 말로써 문제제기 하고 해결책을 찾는 언론인이나 정치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이어야 한다. 그러나 당면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참 암울하기만 하다.

예를 들어 수만명 투자자들의 피같은 돈 수조원을 가로챈 희대의 사기꾼이 만에 하나라도 사기로 번 돈의 일부를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기부했다고 그의 죄를 탕감해 줄 수 있을까? 부분적인 선행으로 그 사람의 전체적인 잘못이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고 주장하는, 이성이 마비되고 무조건적인 추종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현존하고 있다.

대화에 있어서 우리는 큰 안목과 틀에서 사물과 이치를 판단하고 논리적인 주장을 해야 한다. 대화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항상 진지하게 들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말을 상대방이 건성으로 듣거나 지루해 하면 기분 나쁘고 더 이상 말하기 싫은 경험을 해 본 우리는 상대방의 말이 지루하고 내용이 없더라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하며 아울러 예절바르게 말을 끊어주는 기술도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독재자들의 한결같은 특징이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나라에서 ‘다름’은 ‘틀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직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는 언론인과 정치인들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아파하고 있다.

자격미달의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위에 오르는 것도 한심한데, 그야말로 한 개인의 정신나간 일탈행위를 침소봉대하여 공안몰이를 시작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니 오직 대한민국의 시계만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칙으로 이미 무자격자인 국가 지도자의 뻔뻔함과 아이들 밥그릇을 볼모로 휘두르는 고위 공무원의 몰염치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말에 전혀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의 치졸함으로 이 나라의 국격은 가라앉고 있다.

『법구경』에서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참다운 공양이요, 성 안내는 얼굴이 미묘한 향이다.”라고 했지만, 어지럽고 냄새나는 나라 돌아가는 모습에 스님으로서의 지나친 표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아픈 국민들을 외면하고 진정한 대화없이 자신의 말만 주장하는 국가지도자의 안타까운 모습이 너무도 서글퍼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뿐이라고 자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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