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권 작가의 ‘밥줄이야기’ 책 표지. ⓒ이동권 작가 뉴스Q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수교양도서로 선정한 이동권 작가의 ‘밥줄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밥줄이야기’는 고등학교 국어시험의 예문으로 인용될 만큼 질 높은 국어쓰기와 깊이 있는 내용을 자랑합니다.

그 첫 번째 ‘밥줄이야기’는 ‘도부-소, 돼지 잡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1년 가까운 시간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이동권 작가는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기자이기도 합니다.

대학에서 미술과 북한학을 공부했지만 민중문예와 야학활동을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후 정유회사에 다니면서 대기업 조직과 일하는 법을 배운 뒤 청운의 꿈을 펼치기 위해 안정적인 밥벌이를 그만 두고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인터넷신문 ≪민중의소리≫에서 문화부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월간 ≪말≫ 기자, 도서출판 ≪알다≫ 편집장을 겸임했습니다. 저서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밥줄이야기>와 1991년 5월의 꽃 <강경대 평전> 등이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행하는 <월간 인권> 등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동권 작가의 ‘밥줄이야기’ 책 머리글입니다.

한층 더 성숙한 것을 꿈꾸며
이 책이 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삶을 순수하게 관찰하고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떠한 삶을 살든지 인간의 숙명과 비애를 인내하면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세상에 이름을 빛내거나 기름진 물질을 채우기 위해서도, 나의 나약함을 극복해주는 것에 이끌리거나 추종하면서 안식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삶의 고해와 슬픔을 그저 작은 몸과 가난한 정신 탓으로 돌리며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인 목표나 본능의 욕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그것에 두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처럼 단순하고 고지식한 인생이 어쩌면 더욱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은가.

지혜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오늘을 사는 나. 생명의 요동을 듣고, 우리이웃의 삶을 관조하며 한층 더 성숙된 것을 꿈꾼다. 후손의 번창과 영생에 몰두하는 것으로, 더욱 윤택하고 화려한 삶을 추구하는 것으로, 고운 태양이 내리쪼이는 무덤을 찬미하는 것으로 내 삶을 채우지 않으리라. 그것은 나에게 어떤 즐거움도 주지 못한다. 나는 더 나은 사랑과 이해로 삶의 날카로움을 정화시키는, 그 고귀한 소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을 제대로 해명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뿐, 오직 정의롭거나 부정한 좋거나 싫은, 믿음을 갖거나 불신을 갖는 타인의 평가만이 기다리고 있다. 내 글은 오로지 해명만이 남았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우리이웃과의 인연이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진지한 탐구와 사랑이 되길 기원하며 두려움을 작은 미소로 바꿔본다.

기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그 사람’을 찾아달라는 한 젊은이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우리이웃을 만난 이유

그가 찾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왜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일까. 그는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해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무작정 그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도 그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 그런데도 그는 그 사람을 열렬히 원했다.

그 사람은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이름 지을 수 없이 고귀한 삶을 살았거나, 방울뱀처럼 예민한 감성을 지닌 예술가는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줬던 명사도 아닐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라면 굳이 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연락처는 여러 군데 널려 있을 테니까. 나는 살며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에 대한 묘한 반감이 차고 음침한 기운을 뿜어내며 방 안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새벽잠을 포기했다. 무작정 사람을 찾아달라는 한 젊은이의 예의 바른 제안, 메마른 샘물을 찾는 심정으로 이 황당한 거래에 동참한 나. 이 기막힌 상황이 나에게는 타인의 삶을 들춰내는 호기심이나 탐정놀이 정도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것도 아니었다. 헛된 욕망르 찾아 떠돌다가 미로의 숲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어느 방랑자의 절규처럼 모든 것이 무상의 빛으로 번져왔다. 그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포용하는 단순한 성정만이 필요했다.

처음엔 사람을 찾으러 다니며 글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듣고 막연하게 잡지사나 여행 전문 인터넷 사이트의 원고청탁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있게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여행으로 텁텁한 일상을 달래며 살아왔기에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또 누군가를 찾아가는 여정은 독자에게도 색다른 재미와 감흥을 줄 수 있고, 그처럼 흥미로운 소재도 없을 듯 싶었다. 그러나 그의 요구는 특별했다.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는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무척 당황했고, 한편으로는 은밀하고도 뜨거운 뭔가가 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괴로움이었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나의 행보를 지켜봐 줄 든든한 후원자이자, 믿음을 주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에게 정신을 맡기고 복종할 만큼 젊고 관능적이며 순수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쉽게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알 수 없는 힘에 지배되어 오락가락했다.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고 머릿속엔 흐릿한 영상만이 너울대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그의 청탁을 거절해야만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는 없었고, 혹독한 내면의 성찰이 가젹??우울함을 이겨낼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운명적인 의무감 같은 것이 조심스럽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영혼이 치유되고 고뇌와 갈등에 빠진 정신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을 줄 것이며, 나의 글이 그에게 다른 삶을 열어줄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성스럽고 경건한 것들로 치장된 어떤 행위보다도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마술과 같이 얽힌 매듭을 조심스럽게 풀어내고 싶다는 욕망도, 나란 존재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그의 정신 속에 오랫동안 남게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이런 예감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사랑의 기쁨도 없이 메마른 현실에서 도피하듯 자연을 벗 삼아 살아왔다. 또 그에게만 얽매여 눌러앉아 버렸다. 정말 고독하고 처량해 보였다. 아니 스스로 삶을 가로막고 살아온 듯해 언짢아지기까지 했다. 타성에 젖어 길을 떠나고,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매일 아침 맛보는 허탈감을 나이 탓으로 돌렸던 내가 한심했으며, 따뜻한 자연의 숨결과 참다운 사랑의 기쁨을 삶으로, 더욱 유익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그래. 불길한 예감 때문에 부서지거나 동요될 필요는 없다. 그가 애타게 찾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나의 가슴에는 무한한 자긍심이 타오를 것이며, 구멍 나고 찢긴 그의 상처도 깨끗하게 나을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강약이 분명해 호소력이 있었다.

“제가 찾아달라고 하는 그 사람은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삶을 끊임없는 사랑과 기다림으로 조이고 압박하는 사람이에요. 뜨거운 햇볕이 부서져도 서늘한 그늘이 있고, 지루한 장마가 쏟아져도 안락한 보금자리가 있고, 사나운 해일이 몰아쳐도 든든한 산봉우리가 있듯이 그 사람은 저에게 그런 존재지요. 가끔은 새롭게 발견하는 저의 단점들을 알게 해 부족한 것을 채우도록 하고, 어디로 가는지 수시로 꾸짖으면서 제 길을 가도록 늘 보살핍니다. 선생님께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철청에 갇힌 외로운 새 같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그와 같이 젊었을 때는 사랑까지도 정신적이어서 누군가를 흠모하면서도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예의 바르고 말이 없었으며, 사랑해주는 사람은 많으나 진정한 친구가 없었다. 그의 모습에서 젊은 날의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내게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경험 덕분이었다.

“그래요. 그 사람을 찾으러 떠나겠어요.”

나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때 신비로운 광채로 빛나는 하얀 얼굴이 눈앞에서, 코끝을 스쳐가듯 아주 가까운 곳에서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과연 그가 찾아달라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내가 찾은 그 사람, 우리이웃을 여기 이 책에 소개한다.

인내하며 답을 기다리는 날, 이른 아침에 이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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