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 전용 버스기사-한국을 싣고 다니는 사람들

여행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가르친다.
어떤 만남보다도 강렬한 인연을 선사하고
더 넓은 세계와의 조우를 통해 아늑한 행복을 맛본다.
대개의 사람은 딱 거기에서 여행의 의미가 머물러 있다.

산해진미가 넘치고 즐거운 여흥이 있는 곳으로 떠나더라도, 거센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갈매기가 눈에 띌 것이다. 때론 우리이웃의 안타까운 삶도 만나고, 때론 현실에 질식해가는 자연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럴 때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감정들을 영혼의 뮤즈에게 맡겨야 한다. 혹독한 성찰의 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쯤은. 

▲ 외국인 관광객 전용 버스들. ⓒ이동권

메뚜기 떼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행렬이 갑자기 징그럽게 느껴지는 날이면, 서울 바닥을 돌아다니다 인구과잉을 실감하는 날이면 어디론지 떠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이 숨 가쁘게 생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마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물론 도로의 먼지까지 들이마시는 삶을 마다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떠나고 싶은 충동에 빠져들 때는 가슴이 두근거려 미칠 지경이다. 불편한 곳에서 새우잠을 자게 되더라도, 이마에 시커먼 땀이 맺히고, 종아리가 퉁퉁 부어오를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마주치는 날이면 떠나고 싶다는 충동은 더욱 구체화된다. 뜨거운 공기와 따가운 햇볕이 타오르는 ‘열대’다. 무더위 때문에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핀잔을 주는 지인도 있고, 모든 여행자들로부터 악평이 자자할 정도로 숨이 턱 막히는 곳일 수도 있지만, 일상에 특별한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날 자신이 있다. 우리에게는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서울이 외국인에게는 커다란 기쁨을 주는 장소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 이국의 정취가 주는 색다른 감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관광버스 운전은 여행 아닌 노동

외국인 관광객 전용 관광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들을 만났다. 이들은 관광객들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곳을 향한다. 하지만 표정은 다르다. 제아무리 멋진 관광지로 떠난다 해도 ‘가시철망’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여행에 대한 설렘은 잊은 지 이미 오래다.

아침 7시. 일본인 관광객들은 이른 아침부터 식사를 챙겨 먹고 하나둘씩 호텔로비에 모였다. 알록달록한 여행용 가방을 둘러메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 가이드를 기다리는 모습이 마냥 천진난만하다. 샌드위치를 한 입 가득 베어 문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눈 내린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것이 바로 여행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이틀 동안 무리한 일정에 쫓겨 다녀서인지 이들의 뺨에는 피곤한 기운이 가득했지만 한국에서의 색다른 체험을 기대하는 표정은 숨겨지지 않았다.

H여행사 김영호 기사는 피곤에 지친 얼굴로 호텔 앞에 버스를 댔다. 얼굴은 근육이 마비된 것처럼 무표정하다. 외국인 관광객이 올 때마다 똑같은 코스를 도는 일이 지겨워서일까. 그래도 일은 일이다. 관광객들과 별다른 얘기를 나누지는 않지만 미소를 짓는 센스는 잊지 않는다. 이런 여행 같지 않은 여행을 수없이 해왔지만 아직도 즐길 마음의 여유는 조금 남겨둔 듯싶다.

그에게도 여행은 즐거운 것이었다. 유독 등산을 좋아해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면 산으로 떠났다. 널따란 산등성이에 핀 눈꽃을 만나고, 촘촘하게 늘어선 소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땀을 식혔다. 하지만 관광버스 운전을 하고 나서부터는 ‘떠난다’는 것이 그리 즐겁지 않았다. 가끔은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 같아 어두운 감정에 빠져들기도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직장 다닐 때부터 관광버스를 운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스트레스가 많네요. 장시간 운전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이제는 집에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설악산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제 인생에 있어서 정말 아름다운 일이었는데, 이제는 ‘설악산’ 소리만 나와도 좀 지겹고요.”

운전석에 앉아있던 김 기사는 나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나서야 긴장이 조금 풀린 듯 캔 커피를 따 건넨다.

▲ W투어 임석광 기사. ⓒ이동권

입맛 맞추기 힘든 가이드

김영호 기사의 어깨에는 피곤이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관광버스 운전은 빈틈없이 일정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시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운전기사가 제 시간에 버스를 대지 못하면 그냥 ‘아웃’이다.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비싼 돈 내고 여행 온 외국인들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가이드가 여행사에 전화해 버스를 바꿔달라고 말하면 별 수 없이 ‘공’쳐야 한다. 그러나 운전기사가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차가 막히거나 화장실 가는 일이 아니면 많이 늦어야 10분이다. 정작 시간을 무시하는 사람은 관광객들이다. 거의 ‘상습’에 가깝다.

W투어 임석광 기사의 얼굴에도 고달픈 기색이 역력하다. 임 기사는 나에게 ‘여기서 대기하다가 출발하는 시간이 8시’라고 했는데, 8시가 넘어도 관광객들은 올 생각을 안 한다. 하지만 가이드에게 불평을 할 수는 없다. 가이드가 시간 조절을 못해서 짜증이 나도 참고 넘어가야 한다. 가이드가 회사에 컴플레인(Complain)을 걸면 ‘꼼짝 마라’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버스가 바뀐다.

가이드가 여행 일정을 비효율적으로 짜서 괴로운 일도 많다.

“예를 들면 에버랜드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에 정동진으로 출발해서 다음 날 아침 다시 경기도 이천으로 되돌아오는 코스가 있어요. 에버랜드에서 한 시간만 일정을 줄이면 이천에 들렀다가 정동진에 갈 수 있잖아요. 이천은 잠시 들르면 되는 곳인데, 그런 배려를 해주는 가이드가 없지요.”

김영호 기사는 이틀 동안 서울을 돌았다. 그의 차를 탄 관광객들은 남산 한옥마을을 비롯해 서울타워, 덕수궁, 롯데월드에도 들렀고 고려인삼센터, 자수정공장, 동대문, 명동에 가서 쇼핑도 했다. 이날은 설악산으로 이동한다. 단체 관광객들의 여행 패턴이 거의 비슷해 한 달에 몇 번씩은 설악산에 꼭 간다. 중간에는 김치 공장에 들러 잘 익은 총각김치를 맛보는 일정도 잡혀있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가이드와 관광객들은 인사를 나눈 뒤 짐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가이드는 버스에 타자마자 마이크를 잡았다. 일본어라서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푹 잤느냐, 서울 관광은 재밌었느냐, 쇼핑은 잘 했느냐, 오늘은 어디에 간다 등의 말을 나누는 것 같았다.

김 기사는 일본인 관광객이 탄 버스를 많이 운전했다.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의 특성을 잘 안다.

“일본인 관광객들은 남대문이나 동대문, 명동에 들르는 것을 좋아해요. 같은 동양인이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죠. 대부분 쇼핑이나 미용 상품을 즐기고, 제주도나 설악산 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이들은 비교적 예의도 바르고 버스도 깨끗하게 사용하죠. 시간을 어기는 일도 많지 않고요. 중국인들은 조금 다르다고 들었어요.”

중국인 관광객이 탄 버스를 많이 운전해온 임석광 기사의 말이다.

“경찰이 딱지 끊는다고 해도 버스에 타지 않아요. 느려 터졌지요. 명동, 신세계 앞에서는 빨리 내려야 하는데 정말 느려요. 버스 때문에 도로가 막히니까 경찰하고 실랑이도 많이 합니다. 중국인 가이드도 재촉을 안 해요. 그래서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신호위반, 차선위반도 하게 됩니다. 다음 일정을 맞춰야 하니까요.”

잠시 후 김 기사는 설악산으로 떠났다. 가이드와 관광객들이 사진 촬영이나 나의 동승을 허락하지 않아 그대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동 중에 별다른 일은 없었겠지만 분위기상 기사들이 외국인 관광객과 가이드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다.

외국인 관광객을 인솔하는 가이드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나 교포들이다. 불법체류자들도 가끔 있지만 한국 사람은 없다. 그래서 언어, 문화적인 차이로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운전기사들은 지방에 가면 가이드와 한 방을 쓰고, 식사도 같이 한다. 하지만 서울 시내를 돌 때면 운전기사들은 식사를 거의 못한다. 주차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 활성화요?

‘코리아 스파클링(Korea Sparkling)’. 한국관광공사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내세운 한국의 대표 관광 브랜드다. 여기에는 한국을 가고 싶은 나라, 다시 찾고 싶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지원이 섬세하지 못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주 부딪치게 되는 ‘주차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임 기사는 주차딱지 때문에 차에서 굶는 일이 많다. 외국인 관광객을 싣고 다녀도 주차할만한 공간이 없어 애를 먹는다.

“서울시에서는 해외 관광객을 유치한다면서 전혀 배려가 없어요. 관광객만 받으면 뭐하나요? 주 이동수단이 관광버스인데 편안하게 밥 먹고 구경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외국인 관광객 수송버스라고 해도 봐주는 게 없어요. 마포 같은 곳에서는 단속도 많고, 가게에서 신고도 해요. 식당에서 밥 먹으면 한 시간인데 워낙 봐주지 않으니까 밥을 굶을 때가 많죠. 주차할 데가 없으면 혼자서 계속 돌아요.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낭비예요. 기름 값도 비싼데. 잘못해서 딱지를 떼면 기사 월급에서 까요. 하루에 회사에서 1만 원, 가이드에게 2만 원, 총 3만 원을 받아요. 4박 5일 꼬박 일해야 15만 원인데, 한 번씩 주차딱지 떼고 나면 허탈하죠.”

운전기사들의 한 달 수입은 이것저것 다 합쳐서 2백여 만 원 정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버스 유지비는 모두 기사 부담이다. 기름값만 회사에서 내준다. 하다 못해 마이크가 고장 나도 기사가 고쳐야 하며, 세차나 청소처럼 자질구레한 일도 모두 기사 몫이다.

예전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관광버스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회사에서는 할부금 내고, 기사 월급만 나오면 운행하지만 개인 버스는 이래저래 들어가는 것도 많고 수입도 변변치 않아 많이 없어졌다.

“택시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 않더라고요. 운전대 잡으면 일주일 동안 집에도 못 가거든요. 나이 들어서 할 게 없으니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예전에는 팁 문화도 있었다. 거스름돈이 생기면 챙겨줬고, 십시일반으로 수고비도 모아 줬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없다.

근무 시간은 보통 아침 6시부터 밤 9시에서 10시다. 일정이 늦으면 12시에도 끝난다.

외국인 관광객 전용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왠지 무료해 보인다. 좋은 얼굴과 마음으로 관광객들과 마주하고 싶어도, 이들은 수동적인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좀 더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들의 손에 한국 관광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해외관광객 유치를 국가적인 산업으로 생각한다면 정책적으로 주차난을 덜어줘야 한다. 여행은 국가 이미지와 서비스로 승부가 나지 않는가. 아직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 활성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듯싶다.

임석광 기사의 경험담 1
- 손님이 없어졌어요

여행 중에는 부득불 예상치 못한 일을 경험하게 돼요.

“손님을 잃어버렸어요. 롯데월드에서 12시에 나오기로 했는데 나타나지 않아서 4시까지 기다렸죠. CCTV를 판독해보니까 밖으로 나가버렸더군요. 결국 경찰서에서 찾았지요.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 중에는 도망가는 손님이 많아요. 그래서 많이 늦으면 기다리지 않는데, 이분들은 노부부였어요.”

임석광 기사의 경험담 2
- 억울하게 해고를 당했어요

관광객의 부주의가 인솔자의 해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남이섬 갔다 양평휴게소에 잠시 들렀어요. 모두 차에서 내리는데 한 노인이 내리지 않더라고요. 근데 나중에 혼자 내리다가 버스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쳤어요. 딱히 방법이 없어서, 경찰 순찰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급히 데려갔죠. 근데 현지에서 온 인솔자가 해고됐어요. 분명 손님의 부주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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