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김태규 기업살인’ 공동 책임자 시공사·건축주 대표 기소를 요구하는 재정신청이 수원고등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

결국 이 나라의 법은, 아직도 왜 추락했는지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한 청년건설노동자의 죽음에 ‘기업의 책임’이 전무하다고 최종 판단했다.

김태규는 분명 기업의 업무지시를 받고 일하던 중 불법으로 도배된 현장에 의해 죽었다. 때문에 기업 책임자들의 불기소와 재정신청 기각은 틀린 판단이다. 법원은 틀렸다. 법도 틀렸고 검찰도 틀렸다. 이를 용인하는 사회도 틀렸다. 그들 모두에게 분노한다.

한국 검찰은 자조직 득실에서 필요할 때만 적극적 기소를 실행한다. 피가 거꾸로 솟는 파렴치한 짓이지만 “관련법이 없다”는 좋은 면피거리가 있다. 검찰과 사법부는 늘 기업의 살인을 개인화시켰다. 또한 이윤과 노동자 죽음의 맥락을 묵살해왔다.

2008년 이천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에서 40명이 죽은 대참사 책임으로 1인당 50만원에 해당하는 벌금을 선고하며 재판부는 “책임자들이 반성하고 있다”는 황당하고 믿기 어려운 설명을 했다.

2018년 제주삼다수 공장 끼임 참사 사건에서 오경수 사장을 무혐의 불구속 처분하며 검찰은 “사장은 안전관리·사업총괄 책임자가 아니”라고 했다. 당시 사망자와 유가족을 두 번 죽인 삼다수 원청 광동제약의 안하무인 태도를 똑똑히 기억한다.

이 때문에 지금 김태규 청년의 죽음에 대해 시공사 은하종합건설은 물론 발주처 (주)에이씨엔까지 책임이 있다는 유가족의 일관된 입장은, 미친 비상식의 시대에 지극히 상식적이다. 죽지 않았다면 그 땀으로 계속되는 이윤을 취했을 자들이 흘러내린 피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 사회의 정의는 애초에 죽어 있다.

그렇다면 검찰의 면피거리를 없앨 수 있는 한국 입법부는 어째서 이 지독한 불의를 망연히 보고 있는가? 왜 기업 살인 처벌 법안을 국회 안에서 유령처럼 떠돌게 하고 있는가? 나는 이들에게도 깊이 분노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신뢰받는 중도보수 정당으로서 어필해온 역사에는, 군사·권위정권이 유린해온 민중의 인권을 상대적으로 중시한다는 이미지가 크게 자리한다. 결코 지워지지 않을 슬픔과 허망함을 안은 유족들이 자본이라는 바위에 수없이 부딪고 부서지는 이 처철한 싸움에 참전할 것을 요구한다.

180명의 여당 국회의원에겐 그 책임과 의무가 있다. 경제권력이 생명과 돈의 저울질에서 돈을 택했다면, 이제 정치권력은 생명을 택해야 한다. 그 실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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