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영숙 수원여성회 대표

▲ 조영숙 수원여성회 대표. ⓒ뉴스Q 장명구 기자

수원여성회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수원여성회는 1989년 3월 18일 ‘수원여민회’로 첫발을 내딛었다. 성평등하고, 민주적이며 자주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활동하는 지역여성운동단체다. 역대 회장이 10명이나 된다. 수원여성회 출신 경기도의원도 있고 수원시의원도 있다.

지난달에는 ‘수원여성회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슬로건으로 ‘함께하는 여성운동, 함께 만드는 성평등 세상. 30 더하기 1’을 내걸었다. 특히 이날 기념식에서는 수원여성회 30년 활동에서 공로가 큰 회원들에게 수많은 상을 주었다. 시상 제목은 ‘여성운동 30년-사람, 잇다’였다. 그만큼 수원여성회와 연을 잇고 있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얘기다.

지난 5일 수원여성회 사무실에서 제11대 수원여성회 조영숙 대표를 만났다. 30년 세월의 소회에 대해 묻고 답했다.

- 30주년이라 소감이 남다를 듯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왜 하필이면 30주년 대표일까?’ 하고 생각했어요. 일이 워낙 많으니까. 그러나 지나고 나니 복이 많은 대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역대 대표님들을 만나서 구술작업을 했습니다. 수원여성회가 30년 동안 했던 일들을 정리한 거지요. 수원여성회 역사를 선배들의 입을 통해서 정리해보자는 거였어요.

‘정말 선배들이 고생을 많이 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활동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게 됐어요. 선배들은 한 여성으로서 가정을 책임지고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를 한 몸에 품어 안고 활동하셨습니다.

모든 대표님들이 활동을 하시면서 마음 아픈 게 아이들 문제였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회의를 하다가 아이의 존재를 깜빡해서, 아이가 어린이집 앞에서 2시간이나 서있기도 했고요. 아이를 데리고 회의에 참석해, 회의가 끝나는 밤 12시까지 같이 있어야 했습니다. 아이 문제로 고생하신 거지요.

30주년 기념식을 하면서 상을 드리고 싶었어요. 상을 받으신 분들이 ‘내가 잘했구나’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자리였습니다. 만족합니다.

신입회원들도 ‘저런 분들이 있어서 내가 이 공간에서 활동을 할 수 있구나’ 하고 느끼신 거 같아요.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표라니 복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 수원여성회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2002년에 인연을 맺었으니 벌써 17년 됐네요. 처음에는 수원여성회 존재를 몰랐어요. 둘째 낳고 일을 그만두었어요. 당시 수원여성회 대표였던 이기원 대표가 ‘한번 여성회 나와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서 나오게 됐습니다.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공감대를 가지면서 계속 나왔어요. 무언가 사회와 연결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와 단절된 것 같았는데 그런 부분을 수원여성회에서 채워준 겁니다.

그림책반 소모임 활동으로 시작했어요. 여성학도 접하게 되고 급식조례 제정운동도 벌였어요. 보육조례 제정운동도 했고요. 그런 활동을 하면서 저의 사회적 효용성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살면서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구나’ 하고 느꼈지요. 그래서 수원여성회에 오래 있게 된 거예요.

- 30년, 특별히 기억할 만한 일이 있다면?

역대 대표가 열 분이에요. 저는 11대 대표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수원여성회를 거쳐 갔습니다. 수원여성회에 와서 새로운 나를 찾고 성장해 나갑니다. 수원여성회에 남아 있지는 않더라도 사회에 나가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습니다. 수원여성회가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회에 나가서 주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경기도의회 박옥분 의원은 완전히 초창기 회원입니다. 수원시의회 장정희 의원이 수원여성회 대표를 맡았을 때는 저도 같이 활동을 했어요. 수원여성회에서 했던 경험들이 경기도의회, 수원시의회라는 정치영역에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겁니다.

수원여성회가 가지고 있는 힘은 소모임 활동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소모임에서 토론을 하면서 자기 생각도 정리하고 관점을 정립하는 훈련도 하는 거지요. 어느 자리에 가서도 올바른 관점 안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겁니다. 수원여성회가 가지고 있는 힘이고 자랑이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초창기 활동했던 선배들을 만나보면 모두 아이 키우는 문제를 얘기합니다. 여성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것이고 사회생활에 있어 걸림돌이기도 하고요.

스스로 해결해 나갔습니다. 제도적으로 아무것도 없을 때 탁아소를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나중에 어린이집이 됐고 보육조례도 제정되면서 제도권에서 받아 안았습니다. 제도권에서 하기 전에 방과후 교육활동을 했고, 지금은 지역아동센터가 꽤나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 사회는 남성으로 대변되는 사회입니다. 끊임없이 시장 출마자들에게 얘기했어요. 이제는 수원시에 여성정책과도 만들어지고 성평등정책관도 있습니다. 수원여성회에서 한 큰일입니다.

초등학교의 죽어가는 공간에 도서관을 만들어 좋은 학교로 거듭났습니다. 성평등강사단은 찾아가는 성평등교육을 하고 있어요.

고은 미투가 터졌을 때 고은문학관을 무산시키기도 했습니다. 수원청개구리 캐릭터인 ‘수원이’의 여자 친구인 ‘다정이’가 생겼을 때도, 공모해서 정한 것인데, 수원시의 몰성적인 고정관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서 ‘다정이’라는 캐릭터를 없애기도 했어요.

수원여성회에서는 우리 일상에 있는 성평등의 문제를 계속 얘기하고 있습니다.

- 30주년 기념식에서 30년 역사만큼이나 많은 분들이 상을 받았습니다.

수원여성회가 자체적으로 활동하는 힘만으로는 절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제일 감사한 분들이 수원여성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후원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직접 돈으로 하시기도 하고, 무언가 일이 있을 때 몸으로, 재능으로 후원해 주십니다. 수원여성회가 계속 갈 수 있는 힘이지요.

3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런 분들이 있어서 수원여성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끊임없이 후원자들을 만나야지요.

- 30 더하기 1, 앞으로 과제도 있을 텐데요.

대표를 하면서 다시 회원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5년차 회원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여성회에 와서 편하게 얘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30 더하기 1’에서 ‘1’은 내년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얘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를 만드는 거예요. 그게 제일 큰일입니다.

끊임없이 성평등이 무엇인지,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가 어떤 것인지 등을 수원여성회에 와서 풀었으면 합니다.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게 우리 수원여성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포부 한말씀.

대표 역할을 하면서 수원여성회를 잘 유지시켜 나가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재밌게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은데 다 품을 여력도 안 되고요. 100이면 120, 130을 투여해야 해서 활동가들이 지칠 수 있는 상황이 계속 옵니다. 활동가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만큼의 여력,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런 게 항상 고민이에요.

더 많은 시민들이 1인 1시민사회단체 후원하기를 하면 더 사회가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정말 자기희생적인 많은 싸움 속에서 사회가 변화합니다. 좀 더 많은 분들이 알고 힘을 주셨으면 해요.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Q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