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 함께 준비하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 박길수 6.15경기본부 홍보위원
올해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0주년이 되는 ‘두 갑자 갑오년(甲午年)’이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핵심 구호는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로 집약된다. 이는 ‘반봉건 반외세’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은 동학란, 동학운동, 갑오농민전쟁, 동학혁명 등으로 다양하였는데, 중등교과서에서는 여전히 ‘동학운동’이라고 하지만 역사학계나 대한민국 법률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이 대세가 되거나 굳어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명칭의 변천에는, 그것의 성격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개재하고, 그것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인 논의들이 배경에 놓인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동학농민혁명의 ‘보국안민’과 ‘척왜양창의’ 정신은 120주년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세월의 간격만큼, 그동안 발달한 우리 사회의 인지 능력, 변화한 삶의 조건에 따라 그 내포는 달라졌을지언정, 그것을 표현하는 구호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오늘 우리 시대의 최대, 최고의 급선무인 ‘민족통일’도 결국은 보국안민, 척왜양창의의 과정이자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20년 전인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당시는 동학에 대한 열기가 사회적으로 대단히 뜨거웠고, 각계각층에서 동학을 공부하고, 기념하고, 토대로 삼아 운동하는 다종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80년대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축적된 열기와 각종 문화적 활동력이 하나의 분출구를 찾아 폭발하는 양상과도 맞물렸다.

10년 전인 2004년 110주년에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한 명예회복을 국가적으로 공인하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되면서 또 하나의 전기가 마련되었지만,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열기는 현저히, 100주년에 비해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저조했다. 혁명의 역사를 그리워할 동력이 사그라지던 정치사회적 여건(‘국민-참여정부’)도 한몫을 했다.

그런데 올해, 120주년에는 ‘두 주갑’, ‘갑오년’이라는 키워드에 기대어 그 열기가 서서히 조성되고 있는데, 특히 지난 20년 동안 이루어진 동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화하고 확산시키는 것이 주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동학농민혁명이 단지 한반도 내의 조선(민족)을 위한 보국안민과 반외세 운동이었다는 소극적 인식에서 벗어나, 동북아시아(한-중-일) 전체, 나아가 ‘지구적 차원’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부각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면, 동학농민혁명은 ‘과거의, 민중의, 역사’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민족운동, 평화운동, 생명운동의 핵심적인 이념과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그러한 인식의 전환은, 다시 민족통일이라는 당면한 민족적 과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안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동학이 민족통일과 연결되는 몇 가지 이유 중에, 동학은 현재의 남과 북이 동시에 높이 평가하는 역사이고, 남과 북에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주요한 종교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천도교의 전위단체(남-동민회, 북-청우당)가 정치사회적인 운동을 전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동일한 조직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로 거론된다.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보국안민, 척왜양창의 정신을 오늘에 계승하여 민족통일을 이루는 것은 물론, 그것을 계기로 한, 혹은 그것의 전제조건으로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동력을 마련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주요한 부분으로 제기되는 과제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물질 위주의 질서에 시천주(侍天主; 사람은 물론 만물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한울님처럼 섬긴다), 삼경(三敬; 敬天, 敬人, 敬物) 같은 동학의 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신문명의 일대 도약을 이루는 ‘다시 개벽’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에 주어진 역사적 책무라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필자는 최근 중국 라오닝성(遼寧省) 선양(瀋陽)에서 남북 천도교 교류 협력을 위한 실무회담에 참여하였다. 남과 북에서 각각 3명씩의 교단 대표(남:천도교중앙총부, 북:천도교중앙지도위원회)와 전위단체(남:동학민족통일회, 북:청우당) 대표가 참석한 이번 회담 중요 의제 중 하나가 바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남북의 천도교가 앞장서서, 남과 북의 동학 (우호) 세력이 함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이 의제는 이미 지난해부터 구체적으로 남북 천도교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남측에서는 다시 천도교단과 범 동학 진영, 즉 전국 각 지역의 기념사업회와 시민단체 등이 연대하여 기념식과 기념사업을 함께 진행하는 문제를 협의 중이다.). 남과 북의 천도교 단체(중앙총부-중앙지도위원회, 동학민족통일회-청우당) 사이에는 이러한 ‘공동 개최’ 원칙에 어떠한 이의도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였으며, 이러한 원칙이 무난히 관철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성숙시키는 노력을 병행하자는 데에도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현재의 역사(현실)의 부조리와 불합리와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거나 새로운 사실에 대한 관심과 조명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무한정 과거로 나아갈 수는 없는 법이고, 오늘 현재의 역사의 출발점으로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을 갖는 것, 혹은 그러한 혁명 역사의 출발점으로서의 1860년 동학 창도 당시에 주목하는 것은 민족통일시대를 여는 중요한 계기와 동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에 거는 기대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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