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Q
> 연재 > 윤임식의 쌩Q 뻑Q
<긴급발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상)보충발제: 해방은 자율인가? 타율인가?
윤임식  |  news@newsq.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11.27  17:03:2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사진(좌) 육문중학교 시절의 김일성. (우)항일 빨치산 시절의 김일성 *한국 근현대 민족해방 운동사, 백산서당

1. 김일성 주석의 어린시절

본명 김성주, 평양출생 빈농의 아들, 아버지(김형직 선생, 당시 조선 최대의 독립운동조직인 조선국민회 핵심 조직가이자 활동가.

김 주석은 7살 때 평양감옥에서 아버지를 면회. 체포 투옥된 뒤 고문, 구타 당해 상처, 멍투성이 아버지(불굴의 모습)와 조우.

이듬해 8살인 김 주석은 3.1 시위군중과 무장경찰의 격투를 보고 “나의 유년시절 끝났다!”

8살 때 중강(진) 이사(아버지가 한의사 신분으로 위장, 반일투쟁), 평양과 팔도구 소학교에서 공부함. 아버지는 학습을 철저히 관리(형권 삼촌조차 간혹 종아리를 맞기도 함).

아버지는 공산주의 방식 독립운동으로 전환. 실천하다 난치병을 얻음.(고문 후유증. 남만에서 2차 체포 후 동지의 도움으로 극적 탈출에 성공, 겨울철 낟가리 수일간 은신으로 동상, 압록강 도강시 재차 동상)

매우 강건했던 아버지가 32세 요절(1926. 6. 김 주석 15세 추정). 6년 뒤 어머니 강반석 여사 사망, 유격대 남만 원정 중 사망, 어머니 임종 보지 못함.

아버지의 유산 3가지:
지원(뜻을 원대하게-세속적인 인생교훈 아님) > 해방은 하루 이틀에 성취할 수 없음 > 백절불굴의 혁명정신).
3대 각오(독립운동하는 사람은 얼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를 가지고 해야 함).
동지 획득의 사상과 권총 2자루.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 가족이 고향인 평양을 떠났지만 (해방 후) 돌아온 사람은 김 주석뿐!(할머니와 사립문 앞에서 눈물의 상봉)

가족들의 희생
김형권 삼촌 고문 옥사(최후의 순간에서야 혁명군 대장인 조카의 신분을 알림). 김철주 동생(전사). 외삼촌 13년 여 복역 후 사망.

“수십 수백 만의 조선사람들이 일제의 학정 밑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불타 죽고 맞아 죽었다.”

중등시절 민족 지도자인 도산 선생 길림 강연(선생의 민족 비하, 사대주의, 계몽적 관점)에 비판적 질문. 우리 민족은 거북선, 금속활자, 수당을 좌절시킨 훌륭한 민족이다 > 조선 5백년 봉건 관료배들의 썩은 정치로 망국.(아버지 말씀)

2. 길림 육문 중학시절

고인이 된 아버지 영향. 새사조 ML(맑스 레닌주의) 학습 토론 > 반일독서회 조직 > ㅌ·ㄷ, 타도 제국주의 동맹 결성(현 조선노동당의 모태) > 지하혁명조직 활동 중 체포 > 고문(혁명노선 고민) > 반제청년동맹, 공산주의 청년동맹 조직.

☆카륜회의: 혁명노선, 무장투쟁노선, 당창건노선(대중조직 건설 확대, 근거지 확보)
☆명월구회의: 무장투쟁 확인(수년에 걸친 무장투쟁과 지원 후비대 준비)
☆1932. 4. 25 조선인민유격군 창설(일제의 만주 침공 직후, 무정부 상태 이용)

3. 자력갱생

무장방식도 자력으로!
나무대포, 연길폭탄, 작탄 등 자력으로 개발 > 일제는 공포의 도가니!

*손원금(수십리 길 전화선을 이용 무기 개발, 폭약 실험 중 시각장애 > 좌절하지 않고(보천보 전투 등) 승리를 선전하고 다님 > 화형 당함.

4. 반일 민족해방 통일전선

유격구, 반유격구(낮에는 적구, 밤에는 유격구) 전면적인 건설.
유격구 통치방식을 처음에는 소비에트 방식으로 했으나, 혁명노선과 괴리 발생 > 유격구 이탈 > 통일전선 정부 형태인 인민혁명정부로(8시간 노동제, 임금 2배)

☆동녕현성전투:
빛나는 전투와 승리를 통해 중국인 민족주의 군대와의 통일전선 구현(구국군 오의성 부대와 위험을 무릅쓴 담판에 성공, 공동 전투 계획 수립) > 관동군 500 + 만주 괴뢰국 군대 연대병력 격파

전투 중 구국군 사령관인 사충항 중상 > 중국인 부하들이 포기하고 버리고 떠남 > 김일성 부대 구출 작전(최현) > 전설이 됨 > (후에 사충항은 공산주의로 전향-1936년, 조선광복군[동북항일혁명군] 결성시 제2군 5사장. 김일성은 2군 제6사장)

*볏집을 무적황군으로 착각하던 겁쟁이 구국군을 변화시킨 김일성 부대!

5. 북만원정 영안지역 혁명화는 통속성과 진실성!

보수적, 패배주의 일색의 영안지역에 뛰어난 정치일꾼을 파견 선전사업을 했으나, 거듭된 혁명화 실패 > 홍범 중심 하모니카 중주단 구성(아리랑 등을 연주하며 조선인들의 마음을 움직임) >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김보배의 (일본군 흉내) 익살과 정서적 공감대(정치선전 결합) > 혁명화에 성공!

*해방 후 홍범은 70이 되어서야 경비일을 하던 중 (조선인민 유격대 출신인) 자신의 신분 밝힘. 김 주석은 긴 목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 홍범을 회고함.

1934년 3월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2개 사단, 1개 연대)으로 확대 개편 – 반도 전역 가장 강대한 항일무력. 3천명.

6. 김주석의 기적적인 생존

-교하 아주머니(체포 직전-자신의 아기를 등에 업고 부엌일을 하게 함. 옆집에는 개(밀정) 거주.
-나자구 등판 마 노인(탈진 동사 아사 무장해제 위기, 사냥감과 피난처 제공)
-천교령 김 노인(김 주석 심각한 부상, 담가에 실려 부하들 운반 중, 수일 동안 눈만 먹으며 토벌대의 추격 받음. 사면초가, 전멸 위기)의 신비롭고 기적적인 구원

*김 주석의 해석, “기적적인 생존이 가능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고 인간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기 때문에 인민들의 지지 지원을 받은 것.”

◎ 보충자료 <해방은 타율에 의한 것인가?>

   
▲ 1975년 UN 총회에서 의결 해체된 UN사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는 주한미군 사령부.

<질문> 한국 근현대 민족해방 운동사(이재화, 백산서당)

- 민족해방운동의 주류는?

1. 3.1운동 - 독립군운동 - 임정과 광복군(×)
2. 3.1운동 - 노동자, 농민운동 - 항일무장투쟁(○)

7. 역사적인 조국 광복회 결성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
☆1936. 5. 조국광복회 결성(민족통일전선 기초)과 10대 강령 선포(김일성 부대의 동만주 유격근거지 실천활동과 사상투쟁의 성과 위에 만들어졌음)
*(통계: 1938년 한 해 동안에만 조선인민혁명군과 일만군과의 교전 횟수가 무려 1,180여 회)

8. 제2차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

1939. 9. 독일 폴란드 침공 > 제2차 제국주의 전쟁 발발, 일제 패망은 불가피한 것으로 파악됨.

1940. 8. <돈화현회의>: 관동군 20만 부대의 대대적인 학살과 토벌 > 수천 수만의 애국 민중 희생 > (역량 보존을 위해) 대부대에서 소부대 소조 활동으로 전환

1941. 6. 나치의 러시아 침공, 12월 일본 진주만 도발

1942. 6. 조선인민혁명군 다수의 정치공작조 국내 각지 파견(조선, 동아 보도- 공비 김일성 일파)

*청진 나진, 웅기, 원산 항만 요새 정찰

1942. 8. 전면전 준비하는 소련군의 요청 > 조선혁명군 대부분 야영훈련, 군정학습(조선항일유격대 하바로프스크, 보로실로프에서 전투훈련)

1945. 5. 9. 독일 패망

9. 조선인민혁명군의 조국해방 작전 개시

1945. 8. 9. 소련군 대일전 참전
-북만, 동만 항일유격대 소련 극동군과 공동작전(국내 상륙작전) > 관동군 급격히 붕괴

1945. 8. 11. 웅기, 나진, 청진, 나남 해방 > 만주의 백만 관동군 괴멸적 타격(조선인민혁명군 + 소련군)

조국해방작전 개시 후 일주일이 지난 15일 일제 항복

일제 계속 저항(원수 소련보다 미국의 지배 원함. 착취 관계 유지 원했음. 실제 이남지역은 맥아더에 의해 식민지 폭압기구 질서 유지)

*조선반도 전역에 인민위원회 구성됨

10. 해방? 타율 아닌 우리 조선 민중의 쉼없는 투쟁 역량 축적의 성과이다!
민중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식민지주 매국노들의 역사관!

11. <고귀한 희생>

1941년 2월 토벌대에 유격대원인 불사조 최희숙 체포 > 고문, 두 눈을 도려냄 > 침략자 질타 > 일제, 심장을 도려냄.

아동단: 부모 잃은 (김)금순 9살, 비상식량인 미숫가루를 먹지 않고 참는 인내심을 보여주기도 함. 아동단 유희부대 (중국인) 대구국군 공연활동 선봉 > 어머니 기적적인 생존 확인(상봉을 앞두고 있었음) > 유격대의 통신 업무 수행 중 체포 > 거듭된 회유와 고문에도 신념 버리지 않음 > 처형

*전기옥: 아동단, 통신임무 수행 중 체포 “총으로 날 쏘지말고 날창으로 날 죽여다오. 그 총알은 유격대에 보내다오.”(사형장에서)

윤임식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6395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호로 56 402호 (호매실동, 한우리빌딩)  |  대표전화 : 031-233-3690
인터넷신문사업 등록번호 : 경기 아 50645 | 등록연월일: 2013년 4월 16일 | 사업자등록번호: 124-51-70008 | 발행·편집인 : 장명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명구
창간기념일: 2013년 4월 30일. Copyright © 2013 뉴스Q. All rights reserved. 이메일 : news@newsq.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