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상 스님
말과 글은 ‘나’라는 주관이 ‘객관’이라는 대상을 인식하여, 그것을 상대에게 전하는 여러 가지 표현방식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언어는 그 민족 또는 그 사회가 세상을 어떻게 경험하고 전달하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라 하겠다.

우리말은 형용사가 매우 발달해 있다. 이것은 다른 민족에 비해 감정이 풍부하고 관찰력이 뛰어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말의 “푸르둥둥” “누리끼리” 등과 같은 형용사와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꾸밈말들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인류최초로 숟가락을 사용한 민족이다. 그래서 손으로 음식을 먹었던 서양의 찬 음식에 비해 뜨거운 국물음식이 발달되었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뜨거운 국물을 들이키고는 “시원하다”고 표현한다. 이처럼 말속에는 그 사회의 문화양식이 들어 있다.

예를 들면 영어와 중국어 등은 “나는 간다 학교에”라고 말하는 반면, 인도어와 우리말은 “나는 학교에 간다”는 어순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표현방식만 보아도 중국과 영어는 개아(個我)중심의 사회에서 발달한 언어이고, 인도와 한국은 나, 너, 우리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강한 사회임을 알 수 있다.

제목처럼 “내 주먹맛을 볼래”와 같은 표현방식은 우리말이 가지는 특성중 하나로써 우리민족의 독특한 성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내 주먹맛을 볼래”는 내가 너를 주먹으로 때려 줄 테니 맞아보겠냐는 것이다. 본래 주먹으로 때리고 맞는 것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을 떠나서 ‘맛’과 ‘보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의도를 더욱 명확하고 정확하게 나타내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무엇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가장 정확한 것은 ‘보는 것’이며, 느끼는 것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이 ‘맛’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그 뜻을 명확하게 알고 전하기 위해 우리민족은 ‘맛’과 ‘보다’다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눈 맛이 좋다(시원하다)’ ‘손맛을 보았다’ ‘소리를 들어 본다’ ‘감을 잡아 본다’ ‘매운 맛을 보았다’ ‘뜨거운 맛을 보다’ 등등.

이처럼 우리민족은 어떤 사건에 있어서 ‘맛’과 ‘보다’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직접 체험한 명백한 사실만을 상대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불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불교는 “믿음”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종교와는 달리 “진리를 보라”고 가르친다. 이때의 본다는 것은 ‘알다’ 즉, 깨달음을 말한다. 마치 구구단을 깨친 아이가 셈을 잘하듯이……․

위와 같은 언어 사용을 전제로 보면 우리민족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것은 조선의 성리학을 기점으로 유일신을 신봉하는 서양문물이 근대화를 주도했고, 반공이데올로기가 주된 원인이 되었다. 흑백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우리민족은 수 천 년을 이어온 듣고→보고(확인)→아는(깨닫는) 삶의 방식을 버리고, 들은 대로 믿고, 묻고 따지기 보다는 어느 한편의 일원이 되는 것을 유일한 생존전략으로 삼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대통령선거에서의 국정원 댓글사건, 앞뒤가 맞지 않는 NLL논쟁에 이은 대통령기록물사건 등등이 일어나도 다수의 국민들은 사실의 진위를 파악하려하기 보다는 종합편성채널 등이 쏟아내는 왜곡된 정보를 무조건 믿고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쥐는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즉, 살려고 쥐약을 먹는다. 이처럼 많은 국민들이 듣고→믿고→편가르기에 빠져든 결과 부자와 권력자들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다수의 서민들은 가난으로 내몰리면서도 같은 편이라고 생각한 집단에 대해 지지를 철회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끝으로 우리민족의 본래 모습인 듣고→보고(확인하고)→아는(깨닫는) 삶의 방식을 회복하여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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