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 주인-새벽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기차가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면 객실에도 어둠이 깃든다.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이웃이 힘들어한다면
이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의 삶도 점점 야만적이고 살벌하게 될 것이고.

돌고 도는 것이 인생. 유치해졌다가 슬퍼지고, 냉철해졌다가 미소를 짓는 것이 삶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오늘과 내일이 똑같은 하루지만 결코 같은 모습으로 되풀이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렇듯이 누구라도 평탄한 길만 걸을 수 없다. 대로를 걷다 오솔길을 달릴 수 있다.

▲ 포장마차에서 파는 입맛을 돋구는 갖가지 안주들. ⓒ이동권

거대한 쇼핑센터가 밀집한 동대문. 이곳의 밤은 한낮처럼 부산하다. 도로에는 지하 주차장으로 밀려드는 자동차들이 가득하고, 상점 앞에는 싼값에 좋은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는 동대문운동장 건너편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 포장마차들은 의류 상가를 기점으로 빙 둘러 진을 치고 있다.

이곳의 밤풍경은 다양하다. 쇼핑을 끝낸 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이들을 유인하는 포장마차 아주머니들의 눈동자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다감했다. 한편에서는 아직까지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라고 믿는 어린 학생들이 큰 소리로 건배를 청했고, 인생의 달고 쓴맛이 주름살에 한껏 스며든 아저씨들도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술잔을 나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버림받은 시인처럼 쓸쓸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였다. 까칠하고 거친 피부의 한 남자는 혼자 곱창을 씹어 넘기기에 여념이 없었고, 피로에 지친 한 아주머니는 그저 멍하니 거리를 쳐다보며 구석에 앉아 있었다.

포장마차에는 수많은 인생이 스치고 지나간다.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 지나갔던 일조차 이곳에 오면 피와 살을 태우는 이야기로 뒤죽박죽돼 버린다.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자신에게 진솔해지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 쓰러지는 밤에도 포장마차는 애틋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로망’으로 둔갑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아저씨, 어서들 와요.”

꽃무늬 앞치마를 두른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활기찬 목소리였다.

“좀 있다 갈게요.”
“그러지 말고 들어와요. 맛있게 해줄게요. 서비스도 팍팍.”

나는 아주머니의 재밌는 표정에 그냥 웃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일상의 자질구레한 피곤마저 말끔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덥고 습한 날씨에도 새벽시장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갖가지 음식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러 입안에 군침이 감돌았다. 돼지 곱창이 양배추, 당면, 양파, 양념장과 함께 뒤섞여 지글지글 익어간다.

▲ 포장마차가 새벽을 달리는 사람들로 흥청거리고 있다. ⓒ이동권

거리의 인생, 강해질 수밖에 없어요

새벽시장 포장마차는 보통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꼬박 날을 새우며 일한다. 동대문 시장 같은 경우는 이동인구가 많아 낮부터 열리는 곳도 있다.

새벽 2시를 넘어서면 아주머니들의 얼굴은 피로에 찌든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썹에서부터 뺨으로 흘러내리는 근육이 단단하게 굳는다.

“피곤해도 어떻게요. 한 접시라도 더 팔아야죠. 지금은 견딜만해요. 새벽 4시가 넘어야 조금씩 힘들기 시작해요. 밤낮이 바뀌어서.”
“손님들 때문에 힘들지는 않은가요? 주정 부리는 손님들도 많을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은 별로 없어요. 와서 자기들끼리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죠. 혀가 다 꼬여가지고 삿대질하는 모습을 보면 한심해요. 기분 좋게 와서 기분 좋게 마시고 가면 좋겠는데. 또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껴안은 것처럼 오만상을 찌푸리는 손님도 싫어요.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데리고 오는 것도 싫고요. 둘이 좋아 만나는 일을 말릴 수야 없지만 뭔가 구린 냄새가 나거든요.”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거든다.

“시장 바닥이란 게 다 서민들이 다니는 동네라 별거 없어요. 술주정이나 싸움질하는 게 싫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해요. 하지만 제일 힘든 건 사람이 그리운 거예요. 어떻게든 찾아올 손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지 않으면 기다려지죠. 바보 같죠. 이 장사를 하다 보면 가끔씩 생각나는 손님들이 있어요.”
“많이 외로우신가 봐요.”
“우리도 다 똑같은 사람이에요. 거리에서 일한다고 감정이 없는 줄 아세요? 손님들이 함부로 대하면 기분 나쁘고 화나요. 장사니까 참는 거예요. 길거리에서 장사한다고 쉽게 보지 마세요. 다른 데서 만났으면 국물도 없어요.”

조용한 목소리에 맑은 눈빛을 가진 한 아주머니는 “포장마차를 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세상풍파에 쓸려 다니다 보면 성격이 거칠어진다고 했다.

“보기 드물게 시골에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어요. 집이 가난해서 돈 벌러 서울에 올라왔는데 뭐 할 일이 있겠어요? 아버지가 소개시켜준 철물점에서 경리로 일하다가 결혼해서 애들 키워놓고 포장마차를 시작했죠. 여기서 일하니까 술 취한 남자 손님들이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마음고생이 많았어요. 남편이 봤으면 큰 싸움이 났을걸요. 요즘은 남편이 가끔 나와서 도와주니까 건드는 손님이 줄었는데 예전에는 심했죠. 음식이 이상하다면서 손을 잡고 놓아주질 않아요. 이것저것 캐물으면서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찝쩍대는 손님들도 있고요. 이런 장사를 하니까 사람이 쉬워 보이나 봐요. 결혼해 남편이 있다고 해도 막무가내예요.”
“어떻게 대응하세요?”
“그냥 뿌리치죠. 손님이니까 싫은 소리는 하지 않는 편이에요. 하지만 서로 싸우거나 분위기 망치면 돈도 필요 없어요. 제가 쫓아버려요. 한번은 손님들끼리 다투다가 의자랑 테이블을 다 부숴놓은 적이 있어요. 경찰을 부르니까 도망가버리더라고요. 정말 무섭게 싸웠어요. 원한이 있는 사람들처럼. 그날은 밤새 장사도 못했네요. 핍박을 받으면 사람은 강해지는 것 같아요. 예전 같았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을 일인데 피 흘리며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별로 무섭지는 않더라고요. 거리에서 일하다 보면 강해질 수밖에 없어요.”

용모를 돌보지 않으면 육체적으로도 쇠약해지는 것일까. 3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지병이 있는 사람처럼 아파 보여 40대 중반 같았던 한 아주머니. 조용하게 양파를 썰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닭똥집을 주문했다.

“얼굴 표정이 좋지 않으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맥주잔에 소주를 채우면서 능청스럽게 물었다.

“힘들어서 그래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해서요. 처음에는 워낙 빚이 많아서 앞이 캄캄했는데 그래도 이제는 조금 숨을 쉴 정도는 됐어요. 아직도 빚은 남아 있지만.”
“어쩌다가 포장마차를 하게 됐는데요?”
“식당을 하다 말아먹고 나니까 가게 얻을 돈이 없잖아요.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장사를 찾다 포장마차를 하게 되었어요.”
“고생 많으셨네요.”
“말도 말아요. 아이도 혼자 키웠어요. 봐줄 사람이 없어 밤마다 업고 나왔는데, 웬만큼 커서 이제는 혼자서도 잘 크네요.”
“애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는데요?”
“몰라요. 집 나간 지 오래됐어요. 이렇게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어디 가서 딴 살림을 차렸든지 감옥에 들어간 것 같아요.”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시를 읽듯 조용하게 소주를 비웠다.

“혼자 술 자주 드세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가끔요. 사람 좋아 마시는 술이 아니라 술이 좋아 마시는 술이거든요.”
“술 조금씩 드세요. 몸에도 좋지 않은 거.”

그녀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돼지고기 볶음을 서비스라고 내놓는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새벽 손님들로 가득찬 한 포장마차. ⓒ이동권

건강보다 장사가 안돼서 걱정

남대문시장은 노란 백열등만이 불꽃을 튈 뿐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지난날의 영화는 모두 세월 속에 묻혀버리고 을씨년스러운 바람 소리가 거리를 맴돈다. 인근에 근무하는 직장인들과 여행객들만이 간간이 눈에 보일 뿐, 몇 년 전까지 국내 최고의 새벽시장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이곳에는 혼자 포장마차에 들러 시간을 곱씹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남자는 술잔을 비운 채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며 연방 혀를 끌끌 찼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얼굴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허름한 행색의 한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칼국수를 먹었고, 또 한 남자는 혼자서 술을 마시다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남대문에서 10년 넘게 포장마차를 하는 아주머니는 몸도 몸이지만 장사가 안돼서 걱정이다.

“장사가 너무 안돼요. 남대문시장에 오면 꼭 찾아주는 단골들이 있어서 이만큼 버티는 거예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더욱 힘들어요. 손님들도 많지 않고요. 오한이 나고 몸이 좋지 않은 날도 그래요.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다음에 손님들이 오지 않으니까 꼭 나와야 되거든요. 돈이라도 많이 벌면 모르는데 매일 출석하기가 곤욕이죠. 그래도 어디 들어가서 일하는 것보다는 맘이 편해요. 내 장사니까.”

아주머니는 이제까지 고생이 만만치 않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마음이 육체의 노력으로 이어질 때 가장 좋다고 배웠다. 기쁨과 성공을 가져올 일에 매진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갈 때 삶에 생명력이 깃드는 것이다. 그러나 포장마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거리에서 장사한다고 우습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한 집안의 가장이고 아이들의 엄마잖아요. 손님이 자세하게 물어오는 것도 싫어요. 그냥 평범하게 봐주세요.”

옆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갑자기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걷잡을 수 없는 말투로 쏘아붙였다.

“어디서 사진을 찍고 그래. 사진 찍지 마. 어디에다 쓰려고.”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후벼 판다. 하루살이 같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푸념이 섞인 듯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러한 반응은 다른 포장마차도 마찬가지였다. 포장마차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듣고 싶다고 도움을 청해도 도통 믿어주질 않았다. 사진을 찍고 질문을 건넬 때마다 아주머니의 얼굴이 점점 사나워져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었다. 이러다가는 소주가 목에 걸려 체할 것만 같았다.

▲ 포장마차에서 파는 석굴을 비롯한 푸짐한 안주들. ⓒ이동권
갖가지 사연이 담긴 포장마차

산낙지를 비롯한 갖가지 싱싱한 해물들이 진열돼 있었다. 입안에 침이 돌기 시작했다. 시장 입구에 있는 한 포장마차에 들어가 석굴을 시켰다. 입맛이 당기기도 했지만, 도통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으니 뭐라도 시켜 먹어야 했다. 물론 사진도 신분을 밝히지 않고 찍어야 했다.

석굴은 해산물 요리를 파는 주점이 아니면 포장마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 중에 하나다. 예전에는 석굴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지만 세상이 변해 포장마차에서도 석굴을 판다.

서울역 인근에서 30년 넘게 포장마차를 한다는 아주머니는 세월이 초로와 같다며 한숨부터 쉰다.

“옛날 포장마차는 없는 사람들이 들르는 술집이었어.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그냥 한 잔 마시고 가는 거지. 100원이면 충분했거든. ‘잔소주’나 ‘카바이트’에다 참새, 닭발, 오징어, 북어 같은 게 유행이었는데 지금은 좀 고급이 됐지. 그때 먹었던 안주가 지금도 팔리지만 별게 다 생겼잖아. 돼지고기 볶음 같은 것도 전두환 시절에 나온 거야. 라면도 없었어. 다 국수였지. 예전에는 여름이나 겨울에 장사가 잘됐는데 요즘은 안 그래. 시원하고 난방 잘되는 데 가서 술 마시려고 하지 누가 포장마차에 와. 싼 편도 아니고. 그래도 많이 들러줬으면 좋겠어. 술 마시고 행패 부리지 말고. 예전 같지 않아서 정도 많이 사라졌지만 포장마차라는 게 원래 진짜 단골장사거든.”
“아주머니는 기억에 남는 단골이 있어요?”
“응. 있지. 예전에 한 여학생이 찾아와 오천 원을 주면서 어묵을 최대한 많이 싸달라고 그러는 거야. 술안주로 파는 오뎅이 뭐 얼마나 되겠어. 이유를 물으니까 언니 집에 간다는 거야. 이 시간에 무슨 언니 집이냐고 물으니까, 언니가 건너편에서 일한다고 알려주더라고. 새벽까지. 거기가 몸 파는 곳이거든. 마음이 좋지 않아서 이것저것 죄다 싸줬어. 사람들이 많다고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서도 친구들하고 자주 왔어. 볼 때마다 기분이 좋더라고. 결혼하고 나서는 좀 뜸하네.”

푸근한 달빛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오듯이 부드럽고 진실한 음성이었다.

“포장마차를 하다 보면 당신 같은 양반도 만나지만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어. 하지만 그때그때마다 안주의 양도 다르고, 가격도 달라지지. 이게 사는 맛 아냐?”

이른 새벽.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군데군데 켜진 가로등 때문에 골목길이 어둡고 밝아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밝고 맑게 느껴졌다.

세상이 얘기하는 ‘진실로 위대한 것’은 천재와 영웅을 추앙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성실한 노동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의 삶 또한 매우 아름답고 칭찬할만한 가치가 있다.

거리에 나와 하루하루를 애쓰면서 살아가는 우리이웃이 얼마나 많을까. 나는 잠을 청하기 전, 이날의 감동을 하얀 종이에 이렇게 쓴다.

‘따뜻하게 안아주자. 우리는 모두가 외로우니까.’

▲ 포장마차가 즐비한 밤거리. ⓒ이동권

 

포장마차는 언제부터?

포장마차는 해방 이후에 생겼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층의 애환을 달래주는 거리의 주점이죠. 참 오래됐죠. 처음에는 참새구이와 잔 소주를 파는 게 다였어요. 1970년대 들어와서야 요즘과 같은 포장마차의 모습을 갖췄죠. 술은 소주와 막걸리를 함께 팔았고, 맥주는 1980년대 이후부터 팔기 시작했습니다.

카바이트 술

옛날 포장마차에서는 맥주병에다 막걸리 넣어 팔았고, 그것을 카바이트 술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어요. 과거에는 막걸리를 만들 때 카바이트를 섞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시절에는 막걸리가 숙취의 마왕으로 불렸죠. 카바이트는 자체적으로 열을 발생하는 화학물질로 석유와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여기에서 장사하면 좋아요

포장마차 최고의 자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나 버스정류장·지하철역 인근, 시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에요. 하지만 큰 도로 옆은 피하는 게 좋아요. 단속 대상이 되거든요. 특히 사유지를 이용해서 장사하는 게 좋아요. 자릿세를 조금 주면 화장실과 물,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있기 때문에 장사하기 편합니다.

자리가 정해져 있어요

포장마차의 자리는 모두 주인이 있어요. 아무나 할 수 없고, 아무 데서나 할 수도 없죠. 단 주인에게 자릿세를 내고 빌리면 가능해요.

안주가 중요해

포장마차 주인들은 모두 음식 맛이 좋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어요. 아무리 인테리어가 좋고, 친절해도 안주가 맛이 없으면 망하기 십상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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