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뉴스Q 자료사진

최근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상담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올해 초 이 마을에 축사가 들어오려고 했는데, 주민거주지에서 가까운 곳이라 주민 대다수가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반대하던 이장이 돌연 찬성하며 동의서에 도장을 찍었고 이후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민들은 축사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이장이 동의한 것을 알았고, 이 과정에서 이장의 금품수수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새로 선임된 이장에게 주민들은 진상조사를 요구했으나, 새 이장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주민들은 이장직을 물러날 것을 요구했으나 새 이장은 이마저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주민들은 과반 이상의 연명을 받아 면장에게 이장 해임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면에서도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다 해임을 못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해당 면의 이장단협의회에서 면장에게 해임 요청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강하게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마을 인근에 들어오는 대규모 축사를 반대하려던 주민들의 싸움은 이제 행정부서를 상대로 한 ‘이장 해임 촉구’ 싸움으로 옮겨갔습니다.

25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그야말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 진짜 문제는 이것이 비단 이 마을에서만 특별하게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별것 아닌 듯한 이 사안 속에는,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이 겹겹이 들어차 있습니다.

첫 번째로 ‘난개발’ 문제입니다. 마을 한복판에, 논밭 한가운데 갑자기 공장이, 축사가, 창고가 들어섭니다.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마을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시청에서 허가가 다 떨어진 후입니다.

시청에서는, 서류상, 절차상 문제가 없기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합니다. 앞으로 더욱 그 가치가 높아질 우리의 농촌, 자연환경에 대한 시의 보다 적극적인 계획과 대응, 대책이 절실합니다.

두 번째로 형식적인 주민동의 절차 문제입니다. 시에서 말하는 ‘절차상, 서류상’에는 주민동의가 포함됩니다. 대부분 주민을 대표하여 이장이나 새마을지도자의 ‘도장’이 들어갑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실제로 주민들의 의사를 수렴하지 않는 경우도 많을 뿐더러, 심지어 이번 사태처럼 공공연하게 ‘금품’이 오가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나 여전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곳곳에서 음습하게 자행됩니다. 더 황당한 것은 ‘이장단협의회’의 적극적인 반발입니다. 뿌리뽑아야 할 ‘검은 관행 카르텔’의 중심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세 번째로 ‘이장’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문제입니다. 상식적으로 ‘이장’은 마을을 대표하는 자로서 당연히 주민들이 선출하는 것이 아니냐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례상으로는 ‘주민총회의 추천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적임자를 읍면동장이 임명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원천적으로 해석상의 문제를 안고 있는데, 현실 속에서는 냉정하게 힘의 역관계에 좌우됩니다.

한마디로, 주민들의 주인의식과 참여의식이 높은 곳에서는 당연히 주민들의 요구에 따르게 되지만, 행정력의 우위가 여전한 곳에서는 종종 행정편의적으로 해석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대통령마저 탄핵시킨 대한민국에서 이미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해석이 일반적이겠지만, 작은 시골 마을로 들어오면 여전히 행정력이 우위인 곳도 많습니다. 주민 과반의 ‘해임 요청’ 연명에도 불구하고 면장이 거부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민주주의’는 절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불의, 부당함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과정에서 발전, 확대되어 왔습니다. 때로는 사안에 따라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렇게 쟁취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형식적으로 이식된 민주주의’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책임질 ‘시민’들이 당당한 주체로 서 있을 때만이 작동 가능한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마을의 주민들은 난생 처음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검은 관행’에 맞서 싸우려는 이들의 걸음 걸음마다 쉽지 않은 어려움들이 암초처럼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용기내어 나서려는 이들을 응원합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용기있는 걸음이자, 동시에 참으로 큰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화성민주포럼 대표
화성희망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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