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포고령 실화 시리즈 제1화

이 수기는 미국 신은미 교수의 제의로 묻혀 있는 현대사 바로알기 차원에서 10회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이 글은 페북 공유는 가능하나 언론 연재는 필자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수꼴언론에 무단도용 당함을 방지하기 위해섭니다.[글쓴이의 말]

▲ 88년 최초의 국회청문회에서 삼청 인권학살을 고발하는 모습.(한겨레신문 1면 진정연 사진기자 찍음) ⓒ이적 목사 제공

잡혀가던 날 하늘은 우중충 했다. 사방이 밀폐된 성냥갑 차량에 실려 나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대여섯 시간을 달리고 있었는데 우리 손목에는 수갑이 채여 있었고 허리와 팔은 포승줄에 묶여 있었다.

끌려가는 4명의 신원을 나는 다 알고 있었다. 계엄사 분류심사를 함께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구석자리의 60대 어른은 김대중 지지자인 전 사천시 곤양면장 출신이고, 이기철이라는 30대는 아버지에게 장가 안 보내준다고 투정하다 잡혀 온 좀 모자라는 사람이고, 내 옆에 앉은 이계만은 동장 출신인데 간통 혐의자라고 한다. 간통을 했으면 교도소로 보낼 일이지 웬 교육대인가 하고 의문을 품었는데 그는 동장 재임 때 경찰에 찍혀서 끌려간다고 했다.

나는 술집 외상값 1만7천원의 혐의가 있다고 끌고 와 놓고는 군 검찰에 끌려갔다 나온 이후부터는 죄명이 바뀌어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계엄포고령 위반이었다.

드디어 차량이 멈춰 섰다. 어딜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두가 공포에 떨고 있는데 차량문이 열렸다. 우중충한 아침 날씨에 붉은 모자를 쓴 군복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우리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이 새끼들 동작 봐라! 0.1초 내로 땅바닥에 대가리를 박는다. 실시!”

민간인들에게 주어진 알지 못할 폭력적 언어. 왜 이들은 우리를 박대할까? 잠시 생각하는데 빨간 모자가 차량 안으로 쏜살같이 후다닥 뛰어든다. 그리고 손에 든 곤봉으로 닥치는 대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때 사천 최 면장이 “어이쿠” 하며 머리를 감싸고 쓰러졌다.

그걸 본 순간, “어르신!” 하고 내가 그 곁으로 뛰어들자 내 어깻죽지에도 곤봉 세례가 쏟아졌다. 4명은 선혈을 흘리며 차량 밖으로 끌려 나갔다.

차량 밖으로 끌려간 나는 “아뿔싸!” 하고 긴 탄식을 쏟아내었다. 사단급 연병장엔 탱크가 우리를 향하여 포신을 겨누고 있었고 완전군장한 군인들 수십 명이 우리 차량을 향하여 앞에 총 자세로 투그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흐드득 몰아쉬었다. 그때 우리를 데리고 온 경찰서 형사가 인수인계 사인을 받더니 “잘 있다 와!” 하고 능글거리는 웃음과 함께 차량을 끌고 사라졌다.

“뭘 봐, 이 개새끼야! 엎드려 쏴! 낮은 포복!!”

나는 방위병 시절에 들었던 엎드려 쏴를 되뇌이며 바짝 땅바닥으로 엎드려 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무수한 군홧발과 몽둥이찜질이 무자비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사람들 10여명이 우리 앞을 기고 있었다. 그중엔 70대 노인도 보였고 교복 입은 고등학생도 보였다.

뒤에서 최 면장의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상대적으로 노년층인 최 면장의 행동이 굼떠 보여 얻어맞는 것이라 여겨졌다. 최 면장의 악쓰는 소리에도 나는 아무런 조처를 할 수 없었다. 붉은 모자가 두 명 당 한 명씩 붙어 자신의 팔이 비틀어지도록 내려치고 있었기 때문에 남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얼마나 기었을까? 한 시간 남짓 짓밟히며 간 곳은 야외무대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나처럼 피를 낭자하게 흘리며 꿇어 앉아 있는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마른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하늘은 가을로 덮혀 있었다. ‘아, 제발 꿈이기를....’ 마른 낙엽 하나가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 새끼. 대가리, 대, 대가리를 내밀란 말이야!”

빨간 모자는 바리깡을 대가리에 갖다 댔다. 머리칼이 툭툭 발등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금방 맨대가리가 되었다. 최 면장, 이계만 등 같이 끌려온 사람들이 눈에 들어 왔다. 피범벅이었다.

‘아!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언어도, 기품도, 윤리도 상실된 지옥의 땅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 앞으로 펼쳐진 시간, 그 시간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때였다.

“야, 일어서 이적!”

나는 위로 얼굴을 올렸다. 중위 계급장을 단 사내였다. 그는 날 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그를 따라간 곳은 헌병대였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군홧발이 복부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이 빨갱이 새끼! 여기가 사제야? 너 같은 빨갱이 새끼들은 정신개조를 시켜주겠어!”

몇 번의 발길질에 정신이 혼미해졌던 나는 최대한 침착해지려 애썼다. 헌병 장교가 의자에 앉으라고 고함쳤다. 그리고 복창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서류철을 뒤졌다. 그리고 손가락에 침을 퉤퉤 뱉어가며 신경질스럽게 페이지를 넘기더니, 여기에 지장 날인을 하라고 하였다. ‘무엇인가?’ 하고 들여다보는데 장교는,

“뭘 봐! 이 개새끼야!” 하며 갈비뼈를 걷어찼다. “어이쿠” 하고 나뒹굴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ㅅ시를 중심으로 암약한 북 비선조직이었음을 자복한다는 내용이었다. 약 1시간 가량을 두들겨 맞다가 내용도 모르는 종이에 서명을 한 후 또 어디론가 끌려갔다.

어디선가 구호소리가 들려왔고 피울음 삼키는 악다구니가 부대 곳곳에서 들려왔다.

“아,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절규했다. 내 앞에는 이미 조국은 사라지고 없었다. 앞으로 알 수 없을 죽음의 계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순간이었다.(다음 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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