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무리 잔인해도 유순하고 정직한 마음은 통한다. 창살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마주 보고 있는 이들의 경계선이 인간의 나뉨이 아니었으면.모든 생명은 채찍질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생명과 양심에 견주어 타인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특히 뼛속까지 스며드는 인간의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면 서로 아끼고 따뜻하게 안아줘야 한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혹은 혼자만의 이기심으로 인간의 양심을 저버린다면 세상을 비관하는 슬픈 영혼은 더욱 늘어나게 마련이다. 교도소에는 두 가지 진실이 존재한다. 때리는 자와 맞는 자다. 서로 진술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교도관이나 수감자 모두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은 교도관이, 내일은 수감자
모두가 잠든 새벽 힘든 몸 일으켜 오토바이를 탄다. 무엇을 먹었는지도 모르게 점심을 먹고 여유 있게 차 한잔 할 시간도 없이 달리고 달려 우리이웃에게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을 전한다. 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성스러운 일꾼인가.우리는 하루하루 힘겹고 지친 숨을 몰아쉬며 꿈과 현실을 오간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달음질친다. 그러나 삶은 늘 전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씩은 크게 상처를 입고 깨지며 넘어진다. 이럴 때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홀히 대해왔던 것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며, 너무 고독해 더 깊은 슬픔에 빠져버린다. 이제, 진정한 사랑을 품고 하나하나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 것 하나 고맙지 않고, 어느 것 하나 기쁨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뜨겁게 주고받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행복한 날을 축복하기 위해 케이크를 자르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달콤한 빵을 입에 넣는다. 언제나 일상은 그렇게 되풀이되는데 그 순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신용이 아니라 오직 돈으로만 지불되고 있구나.인생은 가혹하고 복잡하다. 그 어떤 것이라도 쉽게 성취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이 새삼 고단하게 느껴지더라도 곧바로 진정되며, 그 끝을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와도 다시 힘을 내게 된다. 하지만 인생을 쉽게 보거나 단편적으로 이해한다면 삶은 고통만을 잉태한다. 달콤하고 자극적인 시간에만 삶을 낭비하면서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생일날 환희의 정수는 뭐니 뭐니 해도 ‘케이크’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와 비슷하다. 제아무리 화사한 꽃이라도 언젠가는
기나긴 노력에도 대답이 없어 낙심도 하고 험난한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고개를 떨어뜨리기도 하고세상에 떠밀려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언제나 억울한 일이 되는구나.기본에 충실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크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천한 일이라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현실 인식이 부족한 정책을 결정할 때다. 때론 뒤이어 발생하게 될 일들을 심각하게 따지지 않는 풍토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어둠 속에서 흐느끼는 우리이웃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넓은 혜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회복하지 못할 병에 신음하다 질식해버리고 말 것이다. 새하얀 눈이 휘날린다. 바람에 날리는 하얀 벚꽃 같아 잠시
여행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가르친다.어떤 만남보다도 강렬한 인연을 선사하고더 넓은 세계와의 조우를 통해 아늑한 행복을 맛본다.대개의 사람은 딱 거기에서 여행의 의미가 머물러 있다.산해진미가 넘치고 즐거운 여흥이 있는 곳으로 떠나더라도, 거센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갈매기가 눈에 띌 것이다. 때론 우리이웃의 안타까운 삶도 만나고, 때론 현실에 질식해가는 자연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럴 때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감정들을 영혼의 뮤즈에게 맡겨야 한다. 혹독한 성찰의 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쯤은. 메뚜기 떼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행렬이 갑자기 징그럽게 느껴지는 날이면, 서울 바닥을 돌
기쁨을 말하는 동안은 그만큼 성숙하지 않는다.사랑이 있고, 주위가 내 것으로 넘칠지라도기쁨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그 기쁨이 삶에 미치지 않고 표현하지 않을 때비로소 삶은 성숙한다.골프공이 벙커에 빠지면 발을 고정하기 어렵고, 울퉁불퉁한 곳에 공이 놓여 있어 포인트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멀리 공을 치거나 기술을 걸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악조건과 위기를 모면하는 과정을 거쳐야 실력이 늘고, 여러 가지 테크닉을 키울 수 있다. 인상을 찌푸릴 필요가 없다. 인생에서도 그러한 상황을 즐기고 슬기롭게 해쳐나간다면 당신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호방하게 솟아오른 푸른 언덕에서 향긋한 바람이 풀풀 불어왔다. 잘 가꿔진 정원처럼 인위적인 정취는 지
건전한 정신과 태도가 실존하는 증거는언제나 마음이 불안하고 양심의 가책이 뒤따르기 때문이다.우리가 편하게 쉬고, 일하며, 삶을 찬미할 수 있는 힘도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있어서다.경건하고 겸손한 마음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덕.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깃든 영혼의 소리이며, 더 나은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일종의 가능성이다. 박복한 인생 여정을 걷더라도, 혹시 그것이 외톨이를 만들고, 눈물을 짓게 하며, 바보를 만들지라도 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양심과 대립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친척 어르신은 아파트 경비원이다. 언제나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라고 입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넉살 좋은 할아버지다. 이제
대지가 썩어가고 하늘이 병들어가는 세상.그것을 고민하고, 그것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도자신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모순된 존재가 바로 인간.일상에서 휴지 한 조각, 꽁초 하나 버리지 않고 산다는 것은 숨 막히는 일이다. 청교도적으로 산다는 것은 구속일 수 있고, 삶의 작은 즐거움조차 억압하는 속박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성인도, 성직자도 아니라면 이런 행위에 대해 비꼬는 눈빛을 보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쓰레기를 버리고 거리를 어지럽히는 일은 모두에게 피곤을 주고, 일상의 자그마한 여유마저 감퇴시켜 버린다. 어둑어둑한 골목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팔짱을 낀 채 모퉁이를 돌아가던 한 아주머니가 초등학교 정문 옆에
왜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될까.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는 날이다.당신은 정녕 이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는가.아무리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도 자기 생애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이 많다. 자신을 둘러싼 일들에 조금만 애정을 갖는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밝고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세상이 됐다. 삶의 여정에서 자기의 모습을 밖에서부터 바라볼 수 있다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까지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스름한 밤길을 밝혀주는 가로등 불빛이 하도 고와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뾰족한 전주에 볼품없이 매달린 작은 백열등이었다. 낮에 보았을 때는 메마른 나무돌기처럼 보기 흉한 전구에 불과했다. 녹슨 철 기둥에 매달린
신문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면서 삶의 참된 의미를 구한다.우리의 생명과 우리를 보는 눈을 키워주는 이 귀중한 토양이누구의 손에 의해서 탄생하는지 아는가.그 가치와 소중함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으리라.우리는 왜 아침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다시 잠드는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사색은 조상으로부터 은혜롭게 물려받은 선물. 거기에서부터 삶은 변하고 생명이 깃든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사색하지 않는 삶을 아주 평범한 것이라고 인식한다. 삶에 안주하고 동화돼 자신을 잃어버리고, 우리이웃의 안타까운 삶조차 외면해버린다. 밤이 꽤 깊었다. 이따금씩 골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환한 빛이 없었다면 무섭게 짓누르는 어둠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반 시간쯤 지나자 거리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영화에만 매몰된 채깊은 행복감에 빠져버리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태도다.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이우리이웃의 노고에 대해 얼마나 애쓰고 생각해 줄까.우리는 바쁘다. 할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다. 하지만 우리의 바쁨은 허상에 가깝다. 아무리 바빠도 밥을 먹고, 전화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인터넷을 서핑하고, 여행을 떠나지 않는가. 그럼 진정 바쁘다는 것은 무엇인가. 차마 다른 것을 하겠다는 생각을 못할 때, 그것이 바로 바쁜 것이다. 로프공들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살고 있다. 건물 유리창에 반사되는 하늘이 제아무리 청아해도, 아리따운 아가씨가 가파른 경사면을 걷고 있어도, 발밑으로 뻗어있는 소나무들이 짙은 녹음을 뽐내도, 로프에 매달린 이들은 이러한
생활에서 기분을 전환하고일상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커다란 기쁨이 아니라 소박한 기쁨이다.그것이 타인을 위한 것이라 해도 무엇이 문제이랴.현대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이 값진 것에 머물러 있어야 존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는 밥이 되고, 힘이 되며, 값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 하루,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자. 욕망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쫓으면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 시간이 지났다. 승용차 안에서 음악을 듣고, 신문을 보고, 잠을 자는 것도 지겨운 일. 박기범 씨는 날이 어두워지자 담배를 꺼내 물고 밖으로 나와 가슴을 펴고 심호흡했다. 그리고 주차장 한편에 있는 팔걸이의자에 앉아 담배 연기를
기차가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면 객실에도 어둠이 깃든다.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이웃이 힘들어한다면 이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의 삶도 점점 야만적이고 살벌하게 될 것이고.돌고 도는 것이 인생. 유치해졌다가 슬퍼지고, 냉철해졌다가 미소를 짓는 것이 삶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오늘과 내일이 똑같은 하루지만 결코 같은 모습으로 되풀이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렇듯이 누구라도 평탄한 길만 걸을 수 없다. 대로를 걷다 오솔길을 달릴 수 있다. 거대한 쇼핑센터가 밀집한 동대문. 이곳의 밤은 한낮처럼 부산하다. 도로에는 지하 주차장으로 밀려드는 자동차들이 가득하고, 상점 앞에는 싼값에 좋은 물건을 사려는
치열한 삶의 현장과 마주치면한층 더 겸손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집으로 가는 길, 이 가슴이 훈훈해지는 이유도 당차게 살아가는 우리이웃의 노고 때문이리라.물질문명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더 높은 곳을 향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산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우리이웃의 평화를 깨버리거나 이뤄질 수 없는 헛된 욕망으로 괴로워한다면, 그러한 노력은 깊은 슬픔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잘살아야 하고, 얼마나 많이 가져야 하는가. 절망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다. 수다를 떠는 여학생들만이 활달하게 장난을 치며 걸어 다닐 뿐, 어깨를 잔뜩 움츠린 어른들은 길을 물어도 못 들은 척 상대도 해주지 않을
저 멀리서 흥겨운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오자 웃음을 잃은 노부부가 어깨춤을 들썩인다.이 노래야말로 슬프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는 명약이로고.대개의 인간은 비틀거린다. 강한 강풍을 만나면 흔들리고, 소나기가 내리면 마른자리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달과 같은 인간도 있다.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자신이 정한 궤도를 따라 걷는다. 그 마음이 너무도 확고해 어떠한 어려움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막연한 곳이 아니라 뚜렷한 목표를 향해 걸어가기 때문이다. 애절한 트로트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사라지는 기관차의 기적소리처럼 노랫가락이 구슬프다.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돈 벌러 방직공장으로 갔다. 그날은 벌거숭이가 된 아
오늘도 힘겹게 옷을 벗는다.연갈색 살갗을 구석구석 바라보는 눈동자를 응시하면서 외면에 지배되지 않는 진실을 믿고 삶 그대로의 모습을 따른다. 이 얼마나 강렬한 동경이며 전투인가.거침없이 편안하게 표현하는 마음은 어쩌면 따뜻하고 이해심이 넘치는 마음과 같다. 상대방에 대한 조심이 지나치면 훨씬 더 비관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안하게 누드모델에 대해 얘기할 때 이들에 대한 편견도 사라지게 되리라 확신한다. 놀랄 것도 없고 흥분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온정 어린 마음으로 충고하고 걱정해주는 것이 더욱 옳은 일이다. 금방이라도 차가운 공기가 새어나올 것 같은 소묘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특유의 습한 냄새가 코
삶이란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것이고 스스로 기쁨과 슬픔을 다스리는 치유력도 있지만 가끔은 유쾌하고 탁월한 기교가 요한 날도 찾아온다. 감미로운 술 한 잔이 그리운 날이.술은 인간의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는 매개다. 서로 다른 종류의 술을 마셔도, 취한 순간만큼은 서로의 체질과 문화적 특성을 뛰어넘어 본능적인 뭔가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매력이나 어리고 유치한 감정, 잇속을 떠나 마음을 여는 힘까지,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그 이상한 힘이 술에는 숨어 있다. 약간의 술은 현대인의 삶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채워주는 보약.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술자리까지 거부하지는 말자. 말할 수 없이 찬란한 자연의 생동감은 곳곳에서 넘쳤지만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해버리는 세상. 이렇게도 억울하고 서글픈 누명을 쓰고사는 사람들이 어디에 또 있을까.말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똑같은 말이라고 해도 어느 누구에게는 듣기 좋을 수도 있고, 어느 누구에게는 익숙하지 않거나 싫을 수 있다. 그러한 말 중에서 우리가 신중하고 소중하게 입에 올려야 할 말이 있다. 바로 평가다. 그 의미는 얼마든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해 놀랄 만큼 무겁게 써야 할 것이다.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대나무, 그 끝에 매달린 하얀 천이 연방 바람에 휘날렸다. 그 밑으로는 어린아이가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엉덩이를 드러낸 채 뛰놀았고, 하얀 털이 곱상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휘저으며 그 아이를
밤마다 차가운 어둠이 내려앉은 벽에 기대어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졸면서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다.홀로 잠 못 이루는 사람들아남몰래 간직한 그들의 아픔을, 이제는 반갑게 맞아들여라.소박한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다. 암흑 같은 근심이 고독을 부르고, 자기 안의 노여움이 절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은 것으로 위장하고, 사랑을 의심하며, 스스로 변호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기쁨과 지혜, 다양한 유머와 감동이 있다. 인간의 얼굴이 다르듯 인간의 미소까지도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따라 달라진다. 이것이 관계의 핵심이다. 새벽 2시. 유흥가 뒤편 한 골목길에서 시끄러운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넷이었다. 검은색 양복에 짧은 머리
경쾌한 반주를 따라 부드러운 기타 멜로디가 시작되면빛이 없는 암흑은 환희에 넘치는 별천지가 된다.그러나 애석하게도 삶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그러한 재능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인간은 과거의 유희를 통해 지난 세월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일깨워왔다. 전란이 벌어지고 혹독한 고난에 빠졌을 때도, 그러한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노래를 불렀고, 악기를 연주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 이것을 향유하는 감각과 정신까지 세상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제아무리 출신이 좋고, 훌륭한 교육을 받고, 경력이 화려하고, 금은보화가 많다고 해도 그러한 것까지 결코 뛰어난 것이 아니기에.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가는 곳이 아니다. 접대하는